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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치렌 불법은 정의와 청년의 흐름
‘입정안국’은 책임의 철학·현상의 ‘저류’를 보는 대성인의 안광
위대한 사상·철학은 변동의 시대에 흥륭한다. 거기에는 반드시 사회에 희망을 가져오는
정신의 빛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어본불 니치렌(日蓮) 대성인 재세 당시의 양상을 개관하고 변동기를 보는
불법(佛法)의 관점을 배우고자 한다.<편집자>
내우외환의 시대 정의를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1222년 탄생해 1282년 입멸하셨다.
가마쿠라 막부가 성립되고 30년 후의 탄생으로, ‘승구의 난’이 일어난 이듬해부터
두번째 몽고침략 이듬해까지 생애.
조정과 막부의 내란을 겪고 난 부흥기부터 내우외환(內憂外患)이 끝없이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였다.
불전에 설해진 ‘삼재칠난(三災七難)’ 그대로의 시대양상에 불법(佛法)의 정의를
품고 일어 서신 분이 젊은 니치렌 대성인이었다.
‘선악’의 해답은 불법
헤이안 말기와 가마쿠라 시대에 왜 영향력 있는 종교가가 많이 배출되었는가.
그것은 ‘악(惡)’에 대한 사색이 깊어졌기 때문이라고 역사가
아마노 요시히코 씨는 통찰한다.
13세기부터 14세기에 화폐의 급속한 발달로 정치적으로는 상업과
금융을 중시하는 ‘중상
주의’적인 노선과 종래의 ‘농본주의’적인 노선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전자는 상인·금융업자와 결탁해 소위 ‘악당’과 ‘해적’을 동원하는 것마저
사양하지 않았다.
“사상적으로는, 바로 이 ‘악’에 대한 문제와 정면에서 맞닥뜨려진 사상가들이
가마쿠라 불교의 개조(開祖)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본열도의 인류사회는 (중략) 그때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전환기에 가로놓였고,
그를 통해 생긴 ‘악’을 비롯한 지극히 심각한 문제에 사상가들은 불응하는 일 없이
정면에서 맞붙어 야만 했다.”
밤 도둑, 도적, 산적, 해적…덮쳐오는 악당의 횡행에 사람들이 불안에
시달리고 있던 시대.대성인 재세에 해당하는 무렵 악당이 최초로 횡행한 시기고
제재를 열심히 강구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는 설도 있다.
이러한 악세에 니치렌 대성인은 선악·정사에 대해 한걸음 더 깊은 차원에서 엄한 사색을
거듭해 단호히 정의의 투쟁을 관철하셨다.
대성인은 젊은 날을 되돌아보시고 “많이 여러 지방을 수행(修行)하여
학문(學問)을 닦았으나”
(어서 370쪽)라고 제종이 불법의 정의를 왜곡하여 민중을 광혹시키고 있는
모양을 알았다고 말씀하셨다.
선이란 무엇인가? 악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을 잊기 쉬운 현대사회는
니치렌 불법에서 깊이 배워야 한다.
오늘날 처럼 복잡한 사회구조에서는 민중을 불행하게 하는 악을 간파하기란 어렵다.
정치가도 그렇고 성직자도 그렇고 유언비어 잡지도 그렇다.
국가를 자신을 위한 이용물로 삼은 ‘거대한 악’과 ‘위선’을 꿰뚫어 보는 힘을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어지간히 강하게 갖지 않으면 안된다.
‘망국의 근원’은 사법
그런데 대성인은 젊은 날부터, ‘승구의 난’에서 조정이 막부에 패해
고토바 상황(上皇)을 비롯
한 3명의 상황이 유죄의 말로를 걷게 된 것은 왜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계셨다.
왕권의 붕괴! 그 근원에는 잘못된 종교에 의한 기도가 있다고 갈파하셨다.
“일본망국(日本亡國)의 근원(根源)은 정토(淨土)·진언(眞言)·선종(禪宗)·율종(律宗)의
사법(邪法) 악법(惡法)에서 일어났으니”(어서 172쪽)
날카롭게 빛나는 대성인의 눈빛을 삼가 대하는 느낌이 든다.
복잡한 권력구조와 정치변동이라는 저류에 ‘법(사상)의 정사(正邪)’라는
문제가 있고 이야말로 국가흥망의 근본이라고 단언하신 것이다.
종교·사상은 인간의 근본적인 행위다. 종교적 정의를 등한히 하면 사회는
악의 방향으로 기운다. 어려운 시대이기에 더욱 현상의 저류를 응시하는
눈을 잃지 않아야 한다.
사람의 ‘마음’과 ‘생명’을 응시하는 종교관을 지금이야말로 부흥시켜야 한다.
위선자를 파절하면서
더욱이 대성인 불법이 크게 다른 종교에 한획을 긋는 것은 사회의 평화와
민중의 행복을 위한 강렬한 책임감이다.
대성인은 호조 도키무네에게 “결코 니치렌의 사곡(私曲)이 아니로다.
다만 오로지 대충(大忠)을 품은 고로 자신을 위해 말함이 아니라”
(어서 170쪽)라고 명언하셨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국가를 생각하는 ‘충(忠)’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입정안국(정법을 세워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의 철학이란 종교자의 입장에서
일부러 사회변혁에 파고든 ‘책임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 자체가 사원에 내향하며 혹은 민중교화에만 몰두한 당시 불교 기성종파
속에서는 혁명적이라고 해도 좋다.
실제로 대성인을 박해한 고쿠라쿠사 료칸 등은 자선사업을 자신의 실체를
숨기기 위한 수단으로 하여 법문의 무력함을 은폐하려던 실태를 대성인에게
날카롭게 파절당했다.
이렇게 대성인이 정의의 주장을 한 것에 대해 막부의 요인과 결탁한 위선적인
종교자는 모략을 꾸며 탄압을 음모했다.
예를 들면 대성인의 이즈유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고가 있다.
니치렌의 유죄 중 나라(奈良) 사이다이사 율종의 고승 에이손이
가마쿠라에 행화(行化)했다.
이것은 호조 사네도키의 간청에 의한 것인데, 그 배경에는 ‘율종의
교선확장’을 기도하는 료칸의 강한 압력이 있었다.
‘이후 율종이 호조 씨와 밀접한 관계를 조성한 것 등을 생각하면 니치렌의
이즈유죄는 그 포석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면에서 정법을 외치는 대성인에게 이해(利害)와 원질에 사로잡힌
가마쿠라 정권의 위정자·
성직자가 결탁하여 박해의 마수를 뻗친 ‘계략’을 잘 알 수 있다.
법의 정사라는 근본적인 것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간책을 꾀해 박해한다.
“니치렌의 감문(勘文)이 알려져서, 대몽고국(大蒙古國)을 조복(調伏)하고
일본국이 승리한다
면, 이 법사(法師)는 일본제일의 승(僧)이 되리라. 그러면 자신들의
위덕(威德)이 쇠퇴하리라
고 생각했기 때문에 참언(讒言)하는 것을 미처 아시지 못하고 그들의 말을
받아들여 나라를 망(亡)치려고 하느니라.”(어서 1334쪽)
정법을 근저로 하는 사회건설을 향한 ‘책임감과 전망’에 의거한 수 많은
‘감문’(의견서)은 일본의 불교사 그리고 사상·종교사에 찬연히 빛나는 보배다.
몽고 습격의 위협
또 당시 최대의 국난인 두번에 걸친 몽고의 습격에 대한 대응은
‘비전론(非戰論)’의 조정과
‘주전론(主戰論)’의 막부로 확고히 나뉘었는데 그 실정에 대해 사학자들로부터
이런 지적도 있다.
“몽고의 위협을 앞두고 조정은 종시 무책임한 대응만 거듭하고, 강한 의지 하에
일관된 노선을 선택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정책의 상위가 아닌 불 속에 든
밤을 주울 의지의 유무에 달려 있었다.”
“당시 조정에는 외교권을 막부에 빼앗겼다는 감각은 없고 귀찮은 일을 떠맡긴
안도가 넓혀졌다. 더욱이 무책임한 집단이라는 점에서는
막부의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우왕좌왕한 시대에 대성인은 기성 불교의 힘을 얻어 정상에 선 호조도키요리,
도키무네들에게 정면에서 ‘몽고의 조복은 묘법을 근저로 하라’고 간효하셨다.
이 투쟁이 민중의 행복을 위한 얼마나 깊은 ‘책임감’에서 나온 것인가. 대성인의
자비는 그야말로 책임의 이명이었다.
청년의 혼에 울린 정의
그러한 니치렌 대성인의 경세의 소리를 가장 민감하게 혼에 받아들인 것은
당시의 청년들이었다.
입종 직후부터 대성인의 문하가 되어 교단의 신장을 뒷받침한 것이 시조 깅고,
이케가미 형제, 구도 요시다카 등 무사계급, 특히 20~30대 청년이라는 사실은
가마쿠라 막부의 모습과 권력 항쟁의 파도 속에서 신음하고 격투를 계속한 젊은
마음에 ‘정의’의 대음성이 얼마나 강하게 울렸는가를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대성인 교단의 확대는 격동의 가마쿠라 시대에 일어난 ‘정의’와 ‘청년’의 흐름이었다.
현대 창가학회 욱일의 대흥륭도 정의에 끝까지 산 3대의 대지도자에게 공명한 청년들이
계속 모여 선두에 서서 짊어진 운동이다.
정의가 신장하면 청년이 성장한다. 반대로 정의를 억누르는 사회는 청년을 이용하고
희생시킨다. 그리고 시대 전체가 앞이 막힌다.
이 흐름을 21세기에 이어받아 세계의 대조류로 넓히는 것이 창가학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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