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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레수량품 제16 강의

수량품 강의 6

by 행복철학자 2024.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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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품 강의 6

 

 

[본문]

諸-善男子       於是中間             我說然燈佛等           又復言其

 제선남자        어시중간             아설연등불등           우부언기

 

入於涅槃        如是皆以)        方便分別)            諸善男子)      若有衆生

 입어열반      여시개이          방편분별            제선남자        약유중생

 

(來至我所              我以佛眼)              觀其信等           諸根利鈍)         隨所應度

내지아소               아이불안               관기신등            제근이둔         수소응도

 

處處自說         名字不同)             年紀大小)        亦復現言      當入涅槃

처처자설         명자부동              연기대소          역부현언      당입열반

 

又以種種方便         說微妙法             能令衆生             發歡喜心

 우이종종방편        설미묘법             능령중생             발환희심

 

 모든 선남자여, 이 중간에서 나는 연등불(燃燈佛) 등이라고 설하고 또 열반에 든다고 말했노라. 이와 같은 것은 모두 방편으로써 분별한 것이니라.

 모든 선남자여, 만약 중생이 있어 내가 있는 곳에 내지(來至)하면, 나는 불안(佛眼)으로써 그 신(信) 등의 제근(諸根)의 이둔(利鈍)을 관(觀)하고, 마땅히 도(度)해야 할 바에 따라 처처(處處)에서 스스로 명자(名字)의 부동(不同), 연기(年紀)의 대소를 설하며 또한 나타내서 응당 열반에 든다고 말하고 또 종종(種種)의 방편(方便)으로써 미묘한 법을 설해서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의 마음을 일으키게 했노라.

 

[통해]

 모든 선남자여, (오백진점겁 구원의 옛날부터 법화경 회좌<會座>의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중간에서 나(석존)는 연등불 등에 대해 설하고 또 열반에 든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것은 모두 방편으로써 구별하여 설한 것이다.

 모든 선남자여, 만약 중생이 내 슬하로 오는 일이 있으면, 나는 불안으로써 그들 중생의 신(信) 등의 능력이 예리한지 둔하지를 명확하게 보고, 마땅히 제도해야 할 바에 따라서 각각의 장소에서 스스로 다른 이름이나 갖가지 수명(壽命)의 길이를 설했다.

 그리고 또 명확하게 '응당 열반에 든다.'고 말했다.

 또 갖가지 방편으로써 여래의 진실하고 묘한 법을 설하여, 능히 중생에게 환희의 마음을 일으키게 했다.

 

 [어역]

 * 연등불(燃燈佛): 정광불(定光佛), 정광불(錠光佛)이라고도 한다. 서응경(瑞應經) * 대지도론(大智度論) 등에 설해져 있다. 석존은 과거세에 인위(因位)의 수행을 하던 중, 이 부처에게서 미래성불의 기별(記別)을 받았다.

 * 여시(如是): '이와 같이'라는 뜻

 * 방편(方便):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고자 사용한 가르침. 진실로 이끌기 위한 절묘한 수단을 말한다.

 * 분별(分別): 여러가지 사상(事象)을 구별해서 생각하는 것.

 * 신(信) 등의 제근(諸根): '근(根)'이란 불도(佛道)를 실천하기 위한 능력.

 * 연기(年紀): 연수(年數), 기간의 길이를 뜻한다. 여기에서는 수명의 길이를 말한다.

 

 [강의]

 처음에 '중간'이라고 있는데, 이것은 오백진점겁의 구원에 석존이 성불했을 때와, 인도에서 태어난 석존 재세 때('오늘날'이라고 한다)와의 사이를 말한다. 이 중간에 대해 상세히 말하는 경문이다.

 먼저 일찍이 석존이 "과거에 연등불 등의 부처들이 출현했다."고 설한 것과, 또 "각각의 부처가 열반에 들었다.(입멸했다.)"고 설했던 과거불(過去佛)들이 모두 방편이라고 밝힌 내용이다.

 이 직전의 경문은, 구원실성의 석존이 사바세계에 상주(常住)하며 중생구제의 활동을 계속했다고 설했다. 중간의 과거불이 출현하고 입멸한 모습은, 그 구원실성의 석존이 중생을 인도하고자 방편으로 설하고 또 나타낸 모습이다.

 '연등불'이란, 이전경은 석존이 과거세에 유동보살(儒童菩薩)로서 수행할 때의 스승이라고 설했다.

 석존은 이때의 수행으로 연등불에게서 미래에 반드시 성불할 수 있다는 기별을 받았다. 그것이 석존이 금세에 성불(시성정각)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했다.

 여기에서 특히 '연등불'의 이름을 거론한 이유는, 과거불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부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등불을 비롯한 과거불이 방편이라면, 그러한 부처의 슬하에서 행한 석존의 역겁수행도, 그 결과인 금세의 시성정각도 방편이 된다. 다시 말해, 중간에서 성불한 원인도, 오늘날 시성정각의 불과(佛果)도 이 경문으로써 모두 방편이라며 타파된 것이다.

 이러한 도중의 인과를 타파해서 보면, 구원의 옛 수행이 본인(本因)이다. 또 구원에 성불한 것이 본과(本果)이다. 본인 * 본과야말로 진실한 성불의 인과라는 사실이 여기에서 명확해진 것이다.

 또 여기에서는 '열반'이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해, 연등불 등이 열반에 들었다고 한 것은 방편이라고 했다.

 열반이란 번뇌를 멸한 정적(靜寂)한 경지를 말하지만, 이전경은 거기에 신체를 멸했을 때 '완전한 열반'에 든다고 했다. 그래서 부처의 죽음인 '입멸'을 의미하게도 되었다.

 수량품은 심신(心身)의 멸각(滅却)을 의미하는 '완전한 열반'을 방편이라고 강조한다. 법화경에서 참된 열반은 '지혜의 완성'이다. 결코 심신의 멸각이 아니다.

 그러므로, 설령 부처가 입멸해도 그것은 방편이고, 완성된 부처의 지혜는 구원실성의 석존으로서 상주한다고 설한다.

 

 또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아게(自我偈)에서 '방편현열반(方便現涅槃: 방편으로써 열반을 나타내다.)'이라고 설하므로, 그때에 자세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부처는 자비의 힘으로 민중의 고뇌를 알고 일어선다

 다음에 "모든 선남자여, 만약 중생이 있어 내가 있는 곳에 내지(來至)하면 …"의 아래부터는, 구원실성의 석존이 중간에서 한 행동을 밝힌 내용이다.

 왜 구원실성의 석존이 중간에서 여러 불 * 보살로서 출현했는가. 그것은 '감응묘(感應妙)'의 원리에 의한 것이다.

 경문에 "만약 중생이 있어 내게 있는 곳에 내지하면"이라고 있는 것은, 감응의 '감(感)'이다. 중생이 구원실성의 부처를 느끼고 구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불안(佛眼)으로써…"의 아래는 구원실성의 부처의 '응(應)'을 나타낸다. 구원실성의 부처는 사람들의 구도에 응하여 여러 불 * 보살의 모습으로 출현하는 것이다.

 부처가 '응'하는 근저는 자비이다. 괴로워하는 사람은 생명 오저에서 불법을 구도하고 있다. 부처를 느끼고 있다. 부처는 자비의 힘으로 이 소리 없는 소리를 듣고 일어선다. 중생을 구제하고자 세상에 출현한다. 이것이 감응묘이다.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면, 응하여 일어서는 것이 부처의 자비이다. 창가학회 설천의 근저에는 이 자비의 마음이 있다. 사람들의 고뇌에 동고(同苦)하는 마음이 있다. 바로 그렇기에 진지함이 생기고, 지혜가 솟고, 행동이 되어 발전하는 것이다. 이것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 

 또 도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부처를 느낀다. 지도자를 원한다. 거기에 응하여 부처가 출현한다." 

 부처는 깊은 생명관을 체현(體現)한 진진한 지도자이다.

 인생에도, 사회에도, 문명에도 막힘이 있다. 그 막힘을 여는 것을 생명에 대한 깊은 통찰에 뿌리를 내린 철학이다. 철학이 없는 시대의 사람들 마음은 '이대로 좋은가. 그러나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행복해지고 싶다. 그러나 무엇이 행복인가.' 하며 방황하고 있다.

 

 넓게 말하면, 이 소리 없는 소리야말로 부처를 느끼고 구도하며 부르는 소리이다. 우리는 부처에게 배우고, 이와 같은 현대인의 소리에 응하여 일어서서 정의의 대화의 소용돌이를 일으켜야 한다.

 

 어본존의 공덕이란 부처의 '무량한 대생명력'

 먼저, 경문에는 구원실성의 석존이 자신을 구도하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어떻게 응하는지 자세히 나타나 있다.

 먼저 부처는 중생의 기근이 우수한지 열등한지를 불안(佛眼)으로 통찰하여,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를 파악한다. 그리고 거기에 응해서 갖가지 국토에 출현하여, 자신에 대해서 '명자(名字)의 부동(不同)(여러가지 다른 이름)'과 '연기(年紀)의 대소(大小)(수명의길고 짧음)'를 잘 알 수 있도록 설명했다. 결국 이름과 수명이 다른 갖가지 불 * 보살 등으로 출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열반에 들겠다."고 말하고 입멸했다고도 씌어 있다. 원래 구원실성의 부처의 생명은 영원하다. 그러나 사람들을 이끌기 위한 방편으로, 임시로 수명을 여러가지로 구분하여 끊고, 갖가지 이름으로 출현하고 입멸했다.

 이를테면, 과거의 불 * 보살은 구원실성의 석존의 '분신(分身)'으로서 나타나 모두를 지도했다는 것이다. 부처는 영원한 수명을 자유자재로 나누어 사람들을 가르치고 이끈다. 영원한 수명이란 부처의 무량한 공덕이다. "수량(數量)이란 부처의 공덕을 헤아린다는 것이다."라는 천태의 말도 있다.

 자신의 수명을 완전연소하면서, 모든 시대 또 모든 장소에서 민중에게 공덕을 베풀었다.

 부처가 중생을 구제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자신의 수명인 대생명력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서 주는 일이다.

 부처의 공덕이란 근본적으로는 생명력(生命力)이다. '끝까지 살아가는 힘'이다. 그 부처의 수명(생명력)이 실은 무량하다고 밝힌 품이 수량품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어본존에게서 이 무량한 생명력을 받고 있다. 공덕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이 어본존의 대공덕을 찬탄하면 할수록 우리 생명도 더욱 위광세력(威光勢力)을 더한다. 빛을 발산한다.

 

 불법은 최고의 '건강' '장수'의 법

 어본존에 대한 신심을 근본으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기원하고 움직이고 말한다. 그 올바른 리듬을 반복함으로써 우리 생명과 생활을 '장수(長壽)로' '건강으로' '행복으로' 향하게 한다.

 내가 이전에, 인생을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제안한 다음의 네가지 모토도 이 '신심즉생활의 리듬'을 알기 쉽게 설명한 것이다.

 ①약동감 있는 근행

 ②무리와 헛됨이 없는 생활

 ③헌신적인 행동

 ④교양 있는 식생활

 말하자면 신심은 최고의 '건강법' '장수법'이기도 하다. 

 이상의 경문을 문저로 읽으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먼저 "내가 있는 곳에 내지하면" - 부처 앞에 중생이 모인다는 것을 문저로 말하면, 어본존 앞에 우리가 단좌(單坐)하는 것이다. 부처는 중생의 기근을 보고, 각자의 상태에 따라 법을 설한다. 말법에서 말하면, 만인을 구제하는 니치렌 대성인의 자비로운 행동이다.

 도다 선생님은 이 경문에 대해 "어본존이 우리 신심 등을 관(觀)하고, 커다란 자비를 주시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제근이둔(諸根利鈍)'이란, 우리로 말하면 신심의 후박(厚薄)이라고 할 수 있다. 신심이 깊으면 깊을수록 어본존의 무량한 공력을 나타낼 수 있다.

 도다 선생님은 또 이렇게 강의하셨다.

 "대성인이 입멸에 앞서, 말법의 우리를 위해 어본존을 남기셨다. 살아 계실 때는 니치렌 대성인이라고 말씀하시고, 돌아가셔서는 일염부제총여(一閻浮提總與)의 대어본존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명자의 부동'이고, '연기의 대소'이다. 부처의 정체이다."

 말할 나위도 없이 대성인의 불법은 말법만년의 대법(大法)이다. 미래 영원에 걸쳐 전 인류를 비추는 광원(光源)이다. '연기(年紀)'는 무한이다.

 또 "종종의 방편으로써 미묘한 법을 설해서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의 마음을 일으키게 했노라." - 이것은 바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설하고 어본존의 힘으로 대환희를 솟구치게 하는 일을 말한다. 진지하게 묘법을 수지하면 불행히지는 일은 결코 없다. 절대로 없다.

 도다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다.

 "어본존을 뵙고 대환희가 솟아나지 않는다면 진정한 신심이 아니다."

 환희가 있으면 공덕의 큰 꽃은 더욱더 커진다.

 그러나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아무리 입으로 '자, 환희 환희' 하고 말만 해서는 환희가 나오지 않는다. 근행할 때 발이 저려서 '아직 멀었는가. 아아, 환희 환희' - 이래서는 환희가 생기지 않는다."

 

 신심은 씩씩하게 해야 한다. 진지하게 투쟁해야 비로소 마음이 약동한다. 불법에 비장감은 없다. '정의는 즐겁다.' 이다. 흥겁고 즐겁게, 그리고 밝게 신념의 길을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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