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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 마키구치 선생님의 영예로운 투쟁
창가학회의 원점인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초대 회장의 옥중투쟁을 통해
‘난을 극복하는 신심’의 요체를 말합니다.
1944년, 마키구치 초대 회장은 생애 마지막 설날을
도쿄구치소의 아주 작은 독방에서 맞이하셨습니다.
마룻바닥에는 딱딱한 다다미 한 장이 깔려 있을
뿐이었습니다. 난방도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어본존도 안치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감옥에서 설날 마키구치 선생님은 편지
몇 통을 가족에게 보내셨습니다.
그 중 1월 7일자 편지 내용입니다.(이하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전집》 제10권 인용)
“사다코, 나도 무사하게 여기서 일흔네 살의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여기서 설날 3일 동안
떡도 주고 진수성찬도 차려주었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집을 잘 부탁합니다.”(‘사다코’는
마키구치 선생님의 셋째 며느리다. 셋째 아들 요조 씨는
마키구치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전사했다.)
1944년, 새해에 마키구치 선생님은 세는 나이로
일흔네 살이 되셨습니다.
생각하면 니치모쿠(日目) 상인이 국주간효를
하러 가는 도중에 천화(遷化)하신
나이도 일흔네 살입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옥중의 변변치 않은 식사를 ‘진수성찬’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반찬 가짓수도 적고 영양가도
없는 형편 없는 식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푸념 한마디 하지 않으셨습니다.
유유자적한 모습이셨습니다.
또 선생님은 “대성인이 사도에서 하신 고생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고 쓰셨습니다.
옥중에서 선생님의 기준은 대성인이 받으신
법난이었습니다. 유배지인 사도에 계신
대성인의 모습을 배견하면 자신의 옥중생활
따위는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선생님의 후계자입니다. 여러분도
부디 ‘같은 마음’이기 바랍니다.
조금 난을 받았다고, 조금 고생했다고 어찌
일희일우(一喜一憂)할 수 있겠습니까.
그 난들은 말하자면 인류의 업(業)이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또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뇌를 떠나서는 인간도 인생도 없습니다.
아무런 고생도 괴로움도 슬픔도 없이
지나가버리는 인생은 너무나도 덧없고 어리석습니다.
삶의 보람도 없습니다.
대성인 불법의 극의(極意)는 번뇌즉보리입니다.
괴로움이 큰 만큼, 고뇌가 깊은 만큼
깨달음도 기쁨도 큽니다.
그리고 또 편지에는 “어본존을 열심히 믿으면
잇따라 여러 장애가 나오지만 다 좋아집니다.”
하고 씌어 있습니다.
신심을 열심히 실천하면 그것을 방해하는
‘삼장사마’가 다투어 일어납니다.
그러나 꿈쩍하지 않고 신심을 관철하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습니다.
변독위약(變毒爲藥)할 수 있습니다.
그 대확신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1월 7일자 편지의 내용입니다.
또 마키구치 선생님은 열흘 뒤인 17일자
편지에서 이렇게도 쓰셨습니다.
“신앙을 일심(一心)으로 하는 것이 요즘
내 일입니다. 이것만 하고 있으면
아무런 불안도 없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지옥에 있어도 안전합니다.”
(여기 나오는 ‘지옥’이란 글자는 검열을
받는 과정에서 삭제되었다.)
26일자 편지에서는 “마음 하나로 지옥에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고 쓰셨습니다.
(이 문장도 검열하는 과정에서 원문에서
모두 삭제되었다.)
냉혹하고 암담한 감옥이라는 ‘지옥’도
‘마음 하나’에 따라 ‘아무런 불안도 없다’
‘안전’하고 ‘즐겁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지옥즉적광(地獄卽寂光)’ ‘번뇌즉보리’라고
어서에서 설하는 대로 태연자약하신 마음입니다.
이것이 우리 창가학회 창립자의 위대한
‘신심’입니다. ‘경애’입니다. 대성인불법을
깊이 몸으로 읽으신 분이 우리 스승입니다.
마키구치 선생님의 이런 고생을 생각하면
어떤 고생도 대단한 난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뒤를 잇는 것은 굉장한 영예라는
점을 깊이 확신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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