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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교학

지식과 지혜

by 행복철학자 2024.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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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지혜 

현대인은 지식 지혜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민중을 똑똑하게 하는 것’, 이것은 마키구치(牧口)

초대 회장이 일생을 통해 추구한 것이고민중이 자기

자신의 지혜를 계발하고 그 지혜로 행복해지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학회의 이름도 가치를 창조하자는 뜻으로

창가학회로 지은 것입니다.

 

또 도다(戶田) 2대 회장은 현대인의 큰 착각 중

하나는 지식과 지혜를 혼동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 여러분 중에 지혜와 지식은 정확히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 할 수 있는 분 선물 드리겠습니다.

(지식-교육이나 경험, 또는 연구를 통해 얻은 체계화된

인식의 총체)

 

(지혜-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정신의 능력)

   

우리의 생명의 경애도 지혜의 눈으로 부처의 생명을

내생명 안에서 끄집어내야--활용할 수 있습니다.

 

지혜에 의해 민중이 현명하게 되는 것, 이를 위해서는 타고

넘어야할 과제가 있으니그것은 누구나 자기 속에 무한하게

많은 지혜를 끌어내어 그것을 최대한으로

계발하는’ 방법입니다.

 

개발-원래 있던 재능이나 능력을 더욱 발전 시키는 것

계발-자고있는 의식을 깨워 몰랐던 나의 재능을

알게 해 주는 것 사물에도 쓰임

 

그것은 불법(佛法)에 나타나 있는 생명에 내재하는

불성이라는것에 대한 시점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범부들은 삼악도 사악취로 뒤덮인 생명 때문에

지혜의 문에 들어 가기가 어럽다고 경문에 써있습니다.

방편품제2에서 사리불에게 제불지혜 심심무량 기지혜문

난해난입 벽지불 이라 설했습니다.(모든 부처의 지혜는

매우 깊고 한량이 없으며 그 지혜의 문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들어 가기도 어렵다.)

 

지 그렇다면 무엇으로 지혜의 문으로 들어가서 지헤를

께닫고 지혜를 끄집어 내어 사용 할것인가 하면

답은 바로 남묘호렝게교 제목으로 불러 낸다는 것입니다.

 

석존, 과 니치렌(日蓮) 대성인이 대화로 제자,

문하를 인도하고지혜를 연 것은 잘 알려진사실이며,

또 고대그리스의 소크라테스가 사람들을 지혜로

인도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도 ‘대화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대화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대화가 이해 납득 되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개시오입’, 바꿔 말하면 깊은 지혜의 계발

생각하는데 대화는 아주 일상적인 방법입니다.

 

개시오입의 법리에서 소크라테스적 대화를 보면

불법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상대방의 대답을 부정하는 것은

상대방이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법에서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외부로

부터 온 것이 아니고 본래부터 자신의 생명속에 

내재하는 지혜를 열게 하는 것과 통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은 너 자신을 알라의 원점이기도 합니다.

너는 잘난것도 없으면서 왜 남만 탓하고 있느냐 

너는 너 자신을 바꿀 생각이 없으면서 허구헌날 부인

탓하고 남편 탓하고 자식탓히고 분노를 삭히지

못하느냐 남탓 세상탓 하지말고 당신이 바뀌는게

순서고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지름길이다

 

 자신을 빛나게 하는 것 소크라테스적 대화에서

문제되는 것은 대화자가 갖고 있는 하나하나의 지식·

이론이 아니라 언제나 삶의 방식이 문제였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상대의 말과 행동을 어떻게 받아드리고

이해 하느냐또 어떻게 살았던가 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낡은 자신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출발점에

자기자신이 서는 순간이 넓은 의미 에서 깨달음

불지혜로 통하는 것이 아닐까요?

 

 대화라는 방식 그 자체가 이미 지혜의 길에

들어서는 과정을 내보이는 것은 아닐런지요.

 

왜냐하면 지혜란 일종의 신선함을 가져오는 것이며,

이런 새로운 바람은 언제나 만남 의해 가져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인격과 인격이 전인격적으로 촉발되는 곳에

지혜의 문은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의 경우 지혜란 바로 대화의 묘에 의해

내보여지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용기를 갖고 대화를 하시기 바랍니다

 

묘법의 신을 기축으로 한 대화에 의해 지혜가 솟는다.

자기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튀어 나오고,

상대의 마음을 두드린다. 이것은 누구나 체험하는

일일 것입니다. 친구의 지혜를 여는 생명의 대화는

동시에 자신의 지혜 계발로도 됩니다.

 

! 이야기 하십시요.

 용기를 가지고. 가족과 이웃에게 친구와 지인에게

우리의 위대한 불법을 알려갑시다.

 

저는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역경에도 확신을 갖고 인내 강하게 신심을

지속하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범부는 일생성불을 목표로 하는 신심수행 도중에

건강을 해치거나 생활상의 여러 장해에 부딪쳐 신심의

본질을 잊고 바로 눈앞의 일에 분동하기 쉽습니다.

 

인간은 강한 듯 하지만 약한 존재입니다. 이럴 때야말로

신심의 원점으로 되돌아가 마음을 강하게 먹고 더욱더

강성한 신심을 분기해야 합니다.

 

많은이들이 병에 걸렸을 때 신심하는 자세를 귀담아듣고

실천도 제대로 합니다

다른 장해에 부딪혔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인가 곤란을 만났을 때 그때까지 자신의 신심을

의심하거나 자신이 가진 성격의 단점을 한탄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마음속으로 아무 일도 한탄하지

말지어다라는 성훈대로입니다.

 

(천의 가호가 없음을 의심하지 말며 현세가 안온하지

않음을 한탄하지 말라)

그럴수록 나는 법화경의 행자다. 이 신심으로 타파할

수 없는 곤란은 없다는 강한 확신에 서야 합니다.

 

어려울 때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미래

지향적인 생각이 짧은 인생을 더한층 풍요롭게 합니다.

 

그러한 확신에 사는가 살지 않는가는 역시 평소의

신심으로 정해집니다. 나날이 하는 신행학(信行學-믿고

실천하고 배우고-구도하는)의 중요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나아가 이 글월은 동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떻게

격려할 것인가 하는 자세를 나타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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