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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을 빛낸 인물사전

무착보살

by 행복철학자 2024.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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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착보살

사상사적 평가(思想史的 評價)

불멸(佛滅) 900년 후․용수(龍樹) 200년 후인 4세기 경

인도(印度)에서 태어난 인물(人物)로 범어(梵語)로는

‘아상가(Asaňga)’라고 하는데, 흔히 ‘무착(無着)

보살(菩薩)’로 불리고 있으며,

유가사상(瑜伽思想) 및 법상종(法相宗)의 개조(開祖) 및

미륵신앙(彌勒信仰)을 체계화(體系化) 시킨

인물(人物)로 평가(評價)받고 있음

생애(生涯)

㉠ 개요(槪要)

처음에는 소승화지부(小乘化地部)에 출가(出家)하여

빈두라(賓頭羅 : Pindola)를 따라 소승 공관(小乘 空觀)을

닦다가 대승(大乘)에 몰입(沒入)하게 되었고,

아유사(阿踰사)‧교상미(교賞彌)국(國)에서

법상(法相)의 교리(敎理)를 선양함으로써

법상종(法相宗)의 시조(始祖)가 된 후, 75세에 왕사성

(王舍城)에서 입적(入寂)하였는데, 저서(著書)로는『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20권․『섭대승론(攝大乘論)』3권․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100권 등이 있음

㉡ 동생 세친(世親)을 대승불교(大乘佛敎)로 이끔

소승 비구(小乘 比丘)였던 동생 세친(世親 : 320(?)~400(?))이

논리적(論理的)으로 철저한 『구사론(俱舍論)』30권을

지어 인도(印度) 전역을 휩쓸고 다니면서

대승(大乘)을 비방(誹謗)하였는데,

이런 동생을 제도(濟度)하려다가 병(病)이 난 무착(無着)은

하루는 대․소승(大小乘)을 따지지 말고 세속적(世俗的)인

형제(兄弟)로 만나자는 제안을 하여 함께 만나게 되었음

그 자리에서 동생은 형 무착(無着)의 놀라운 대승(大乘)

법문(法文)을 듣고는 회심(悔心)하여 대승(大乘)을

비방(誹謗)했던 혀를 자르려 하였고, 이에 형이

“대승(大乘)을 비방(誹謗)했던

그 혀로 대승(大乘)을 전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여

대승(大乘)으로 귀향(歸鄕)시켜 대승불교(大乘佛敎)를

흥기(興起)한 보살(菩薩)로 만들었음

㉢ 유가사상(瑜伽思想) 및 법상종(法相宗)의 개조(開祖)

무착(無着)이 진리(眞理)를 깨치기를 염원하다가

미륵보살(彌勒菩薩)을 친견(親見)하고 『십칠지경(十七地經 :

뒤에 중국(中國)의 현장 법사

(玄奘 法師)에 의해『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으로

한역(漢譯)되었음)』을 교설(敎說)받아 모든 대승 교리

(大乘 敎理)를 깨닫게 되면서 유가학파(瑜伽學派)가

형성되었으며,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송출(誦出)하고

설법(說法)한 내용(內容)을

모아 무착 보살(無着 菩薩)이 편집했다고 전하는

『5대부론(五大部論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분별유가론(分別瑜伽論)』․『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중변분별론(中邊分別論)』 『금강반야바라밀경론

(金剛般若波羅密經論)』을 말함)』이 유식학(唯識學)의

가장 핵심적(核心的)인

논전(論典)으로 평가(評價)받으면서 무착(無着)은

유가사상(瑜伽思想)의 실질적(實質的)인 창시자(創始者)로

불리게 되었고, 이 사상(思想)은 세친(世親 : 320(?)~400(?))과

호법(護法 : 530(?)~561(?))․계현(戒賢 : 529(?)~645(?)) 등의

논사(論師)로 이어져 미륵신앙(彌勒信仰)과 함께 인도

신앙(印度 信仰)의 주류(主流)를 이루게 되었음

또한『5대부론(五大部論)』이 진제삼장(眞諦三藏)과

현장 법사(玄奘 法師)에 의해 중국(中國)으로 전해진 후,

중국(中國)에서는  ‘유식학(唯識學)’이 꽃을 피우게 되었는데,

그 후 현장 법사(玄奘 法師)의 제자(弟子)인 자은

규기(慈恩 窺基 : 632~682)에 의해

‘법상종(法相宗)’이란 새로운 종파(宗派)로

자리를 잡게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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