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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착보살
사상사적 평가(思想史的 評價)
불멸(佛滅) 900년 후․용수(龍樹) 200년 후인 4세기 경
인도(印度)에서 태어난 인물(人物)로 범어(梵語)로는
‘아상가(Asaňga)’라고 하는데, 흔히 ‘무착(無着)
보살(菩薩)’로 불리고 있으며,
유가사상(瑜伽思想) 및 법상종(法相宗)의 개조(開祖) 및
미륵신앙(彌勒信仰)을 체계화(體系化) 시킨
인물(人物)로 평가(評價)받고 있음
생애(生涯)
㉠ 개요(槪要)
처음에는 소승화지부(小乘化地部)에 출가(出家)하여
빈두라(賓頭羅 : Pindola)를 따라 소승 공관(小乘 空觀)을
닦다가 대승(大乘)에 몰입(沒入)하게 되었고,
아유사(阿踰사)‧교상미(교賞彌)국(國)에서
법상(法相)의 교리(敎理)를 선양함으로써
법상종(法相宗)의 시조(始祖)가 된 후, 75세에 왕사성
(王舍城)에서 입적(入寂)하였는데, 저서(著書)로는『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20권․『섭대승론(攝大乘論)』3권․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100권 등이 있음
㉡ 동생 세친(世親)을 대승불교(大乘佛敎)로 이끔
소승 비구(小乘 比丘)였던 동생 세친(世親 : 320(?)~400(?))이
논리적(論理的)으로 철저한 『구사론(俱舍論)』30권을
지어 인도(印度) 전역을 휩쓸고 다니면서
대승(大乘)을 비방(誹謗)하였는데,
이런 동생을 제도(濟度)하려다가 병(病)이 난 무착(無着)은
하루는 대․소승(大小乘)을 따지지 말고 세속적(世俗的)인
형제(兄弟)로 만나자는 제안을 하여 함께 만나게 되었음
그 자리에서 동생은 형 무착(無着)의 놀라운 대승(大乘)
법문(法文)을 듣고는 회심(悔心)하여 대승(大乘)을
비방(誹謗)했던 혀를 자르려 하였고, 이에 형이
“대승(大乘)을 비방(誹謗)했던
그 혀로 대승(大乘)을 전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여
대승(大乘)으로 귀향(歸鄕)시켜 대승불교(大乘佛敎)를
흥기(興起)한 보살(菩薩)로 만들었음
㉢ 유가사상(瑜伽思想) 및 법상종(法相宗)의 개조(開祖)
무착(無着)이 진리(眞理)를 깨치기를 염원하다가
미륵보살(彌勒菩薩)을 친견(親見)하고 『십칠지경(十七地經 :
뒤에 중국(中國)의 현장 법사
(玄奘 法師)에 의해『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으로
한역(漢譯)되었음)』을 교설(敎說)받아 모든 대승 교리
(大乘 敎理)를 깨닫게 되면서 유가학파(瑜伽學派)가
형성되었으며,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송출(誦出)하고
설법(說法)한 내용(內容)을
모아 무착 보살(無着 菩薩)이 편집했다고 전하는
『5대부론(五大部論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분별유가론(分別瑜伽論)』․『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중변분별론(中邊分別論)』 『금강반야바라밀경론
(金剛般若波羅密經論)』을 말함)』이 유식학(唯識學)의
가장 핵심적(核心的)인
논전(論典)으로 평가(評價)받으면서 무착(無着)은
유가사상(瑜伽思想)의 실질적(實質的)인 창시자(創始者)로
불리게 되었고, 이 사상(思想)은 세친(世親 : 320(?)~400(?))과
호법(護法 : 530(?)~561(?))․계현(戒賢 : 529(?)~645(?)) 등의
논사(論師)로 이어져 미륵신앙(彌勒信仰)과 함께 인도
신앙(印度 信仰)의 주류(主流)를 이루게 되었음
또한『5대부론(五大部論)』이 진제삼장(眞諦三藏)과
현장 법사(玄奘 法師)에 의해 중국(中國)으로 전해진 후,
중국(中國)에서는 ‘유식학(唯識學)’이 꽃을 피우게 되었는데,
그 후 현장 법사(玄奘 法師)의 제자(弟子)인 자은
규기(慈恩 窺基 : 632~682)에 의해
‘법상종(法相宗)’이란 새로운 종파(宗派)로
자리를 잡게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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