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견디는’ 강인함을
부처의 또 다른 이름은 ‘능인(能忍)’이라고 합니다.
‘잘 견딘다’ 무엇이든 잘 참고 견디는 사람을 말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무엇에도 굴하지 않습니다.
박해를 받아도 투옥이 되어도 모두 끝까지 견디고 불평 한마디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누구도 당해내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으로서 ‘행복’의 근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잘 참고 견디는’
강인함입니다.
살고 또 살고 꿋꿋이 살아가는 힘입니다.
그것이 ‘부처’의 경애입니다. 창가학회에는 이 힘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꿋꿋이 견뎌냈습니다.
그래서 이겼습니다.
‘부처’라는 삼세(三世)에 걸쳐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행복 경애를 견고히 다지는 일이 신앙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금세의 불도수행이 있습니다.
금세를 끝까지 싸워 그 경애를 쟁취해야 합니다.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30년이나 50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는 시간입니다.
‘부처’의 경애가 되는 ‘원인’을 자신이 만든다.
그리고 그 결실을 증명하는 가장 행복한 자신이 된다.
그것이 불도수행입니다.
어떤 세계에도 ‘수행’은 있습니다. 유도, 검도, 스모, 피아노 등
수행 없이는 향상할 수 없습니다. 승리할 리 없습니다.
꿋꿋이 참고 연습해 그 ‘길’을 나아가야 합니다. 기술을 연마하고
학문을 연마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실력이 향상됩니다. 이것의 도리입니다.
‘불법(佛法)은 도리’이기에 불도수행도 마찬가지로 나아간
사람이 이깁니다.
앞으로도 여러 파도가 반드시 덮칠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학회는 태연하게 꿋꿋이 살아가면서 승리해 영원히 ‘이 길’을
당당히 나아가기 바랍니다.
마키구치(牧口) 선생님이 ‘가장 감명했다’고 하신 말이 있습니다.
‘창가교육학체계’에서 스웨덴의 화학자이자 노벨상을 설립한
노벨의 말을 인용해 “내 평생 이보다 강력하고 적절한 교훈을
받은 적이 없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불법 이외에 ‘평생을 살면서 가장 공감한 말’이라는
뜻입니다.
그 말은 바로 ‘유산은 상속할 수 있지만 행복은 상속할 수 없다’입니다.
사실 재산을 상속받아 타락하거나 악인이나 어리석은 인간이 되어
불행을 초래한 경우도 많습니다. 행복은 상속할 수 없습니다.
‘행복’은 누군가에게서 받을 수 없습니다.
누구도 줄 수 없습니다.
‘행복’은 자신이 ‘창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올바른 신행(信行)으로 쟁취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불법입니다. 이것이 마키구치 선생님의 신조였습니다.
그러므로 마키구치 선생님은 ‘교육’과 ‘신앙’으로 ‘자신이
행복을 창조할 수 있는 인간’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그 외에 인류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창가(創價)’ 다시 말해 ‘가치창조의 가치’(미<美>, 이<利>,
선<善>)는 ‘행복’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창가학회는 ‘행복을 창조하는’ 학회이자 ‘행복을 창조하는’
길을 배우는 모임입니다.
‘재산’은 상속할 수 있지만 행복은 상속할 수 없다’
재산을 ‘지위’나 ‘지식’ 등으로 바꿔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위’는 상속할 수 있어도 ‘행복’은 상속할 수 없다. ‘지식’은
계승할 수 있어도 ‘행복’은 계승할 수 없다.
‘지위=행복’도 ‘지식=행복’도 아닙니다.
이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마키구치 선생님의 신조
마키구치 선생님은 평생 ‘어떻게 하면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추구하셨습니다.
결론은 ‘교육혁명’ 이외에 없다.
더 근본적으로는 ‘종교 혁명’ 외에는 없다는 것이 지론이셨습니다.
인간을 만든다, 다시 말해 ‘인간혁명’하는 이외에 행복은 없습니다.
마카구치 선생님은 ‘누군가의 힘으로 행복해진다’든가 ‘누군가가
기원해준다’는 등 ‘기복신앙’과는 처음부터 정반대였습니다.
학회의 창시자는 이런 분입니다.
인생은 ‘생로병사’와 벌이는 투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묘법(妙法)이라는 ‘생사즉열반’의 역용으로
생사의 고뇌를 그대로 깨달음으로 다시 말해 행복경애로
열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대성인의 절대적인 가호가
있습니다. 이점을 굳게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범부입니다.
당연히 여러 고뇌나 병 등 곤란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같은 고난이라도 학회의 세계에서는 많은 동지가 함께
고민하고 마음을 담아 기원해줍니다.
이보다 고마운 세계는 없습니다. 이보다 기쁜 인생의 안전 궤도를
나아갈 수 있는 세계는 절대로 없습니다.
대성인은 어느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귀하가 이 병을 받게 된 사연을 어느 사람이 이를 고하기에
나는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법화경에다 말씀드리고 조모로
청천(靑天)에 호소했는데, 제병(除病)했다는 것을 금일(今日)
들으니 희열이 무슨 일인들 이보다 더하리오. 제사(諸事)는
상면(相面)을 기하리라.”(어서 1298쪽)
그대가 병에 걸렸다고 어떤 사람이 보고하여 나는 (쾌유를) 밤이고
낮이고 아침이고 저녁이고 법화경에 말씀을 드리고 아침, 저녁으로
하늘에 호소했는데 병이 나았다는 말을 오늘 들었습니다.
이보다 기쁜 일은 없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만났을 때 합시다.
이 얼마나 자애 넘치는 말인가. 병에 걸린 사람에게 병은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것을 대성인 자신의 중대한 문제로
여겨 밤이고 낮이고 기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병이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다행이다.
이보다 기쁜 일은 없다’ 하고 기뻐하며 격려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세한 이야기는 만났을 때 합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중한 회원을 위해 진지하게 기원하고 끝까지 지킨다.
이것이 창가학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박해에도 꿈쩍도 않고 지금까지
발전했습니다.
강건, 건강, 장수로 신심의 근본은 ‘기원’입니다.
자신의 일, 벗의 일을 구체적으로 기원해야 합니다.
‘자비’의 근본도 기원입니다. ‘지도’의 근본도 기원입니다.
그 근본을 잊으면 모두 어본존에게서 벗어난 ‘책략’이 되고 맙니다.
책략은 결국 헛돌아 모든 사람에게 폐를 끼칠 뿐입니다.
또 대성인은 ‘병을 회복했다’는 보고를 듣고 그날 중으로
편지를 써서 곧바로 격려하셨습니다.
지체 없이 신속하게 행동하셨습니다.
대성인의 행동을 배견하고 나도 보고를 들으면 곧바로
손을 쓰려고 철저히 노력했습니다.
보고를 들으면 곧바로 ‘대처하고’, 곧바로 ‘손을 쓰는’ 것이
리더의 철칙입니다.
이 신속한 행동이 있는 한 학회는 번영합니다.
그 사람도 성장합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압니다.
나라도 사회도 대처가 좋은 조직이나 단체는 성장합니다.
대처가 좋지 못한 조직은 어둡게 침체하고 맙니다.
그야말로 현대는 스피드시대입니다.
자동차 속도위반은 안 되지만(폭소) 승부는 ‘스피드가 ‘관건입니다.
어떤 사람은 ‘학회가 발전한 원인도 지도자의 스피드에 있다’고
간파했습니다. 신속 또 신속하게 회원을 위해 학회를 위해 행동하는
리더가 되기 바랍니다.
기원을 근본으로 모두 ‘강건’ ‘건강’ ‘장수’하는 생명을
어본존에게서 받기 바랍니다.
또 어본존에게 기원해 ‘날마다 명랑하게’ 살아가는 무량한
지혜를 끌어올리기 바랍니다.
그리고 유유하게 종횡무진 자유자재로 마음껏 행동하는
광포의 지휘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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