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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심의 법
기심(己心)밖에 법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전혀 묘법이 아니다.
기심 밖에서 길을 찾으면 악의 근원인 무명을 타파할 수 가 없습니다.
일생성불이란 끊임없이 무명(無明)과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자기가 변하면 일체가 변합니다. 자기 자신을 더욱 깊이 변하게 함으로써
상황을 개선 할 수 있으며 그 원동력은 기원(祈願)입니다.
그리고 원질과 질투, 동지의 비방 등은 타인의 불성(佛性)을 부정하기 때문에
자신의 불성에 대한 불신과도 통하기에 ‘기심밖에 법이 있다’라는
방향으로 가기에 공덕을 소멸합니다. 그러므로 자타 함께 행복할 것을
원하는 창제가 진실한 일생성불의 제목입니다. 대성인의 불법은 위대한
생명이 자신에게 있다고 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최대로
일념전환을 하는 신앙입니다. 자신이 묘호렌게쿄라고 정하면,
어떠한 고난도 극복할 수 있고 나는 반드시 행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해 용감하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에도 승리 할 수 있습니다. 인간(사람)의 일념(一念)에는
무한한(한없는) 힘이 있다. 그 일념(一念)이 묘법(妙法)과
일체(一體)가 되면 우주대의 위대한 힘을 나의 몸에 나타낼 수가 있다.
창제(唱題)는 묘법과 자신이 나누는 교류(交流)이며 묘법과 일체가
되기 위한 수행(修行)입니다. 불법은 전부 기심의 법입니다.
성불이라는 생명의 근본적인 변혁도 그 근본은
인간의 마음차원의 변혁에 있습니다.
내 일념의 변혁이 모든 변혁의 열쇠입니다.
자신이 바뀌면 세계가 바뀝니다.
법화경의 이념에 따라 위대한 변혁의 길을 만인에게 열어 가르친 것이
대성인의 불법이며 그 변혁의 근본이 되는 실천이 창제행입니다.
정명경에 “중생의 마음이 더러워지면 국토도 더러워지고 마음이
깨끗하면 국토도 깨끗하느니라” 설했으며 정토(淨土)와 예토(穢土)는
별도의 세계가 아니라 중생의 마음의 선악(善惡)으로 결정된다고 했습니다.
즉 중생이 스스로 변혁함으로써 현실사회를 정토로 변혁케 하는
정토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중생이라 함도 부처라 함도
또한 이와 같으니 미혹할 때는 중생이라 이름하고 깨달을 때는
부처라 이름 했느니라. 변혁의 근간이 되는 것이 중생의 생명이
미혹에서 깨달음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 전환을 가능케 만드는 것이
창제이고 심적인 차원에서는 신(信)입니다. 즉 신(信)으로 미혹의
근본인 무명(無明)을 타파하고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생명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본래 중생은 묘법의 당체입니다.
자신의 생명에 갖추고 있는 무한한 묘법의 힘을 아무런 방해 없이
필요한 때 필요한 형태로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부처의 생명입니다.
그러나 묘법의 당체라고 하더라도 생명이 무명에 뒤덮이면 묘법의
힘을 발휘 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연마해야만
묘법의 힘을 발휘 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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