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짧은 지도

신심의 자세와 제목

by 행복철학자 2024. 8. 20.
728x90
반응형
SMALL

신심의 자세와 제목

사자왕(師子王)은 전삼후일(前三後一)이라 하여 개미새끼를 잡으려

할 때나 또한 사나운 것을 잡으려 할 때나 힘을 내기는 매양 한 가지이니라.

니치렌(日蓮)이 수호(守護)의 어본존(御本尊)을 쓰는데 있어서도

사자왕(師子王)에 못지 않노라. 경(經)에 가로되「사자분신지력(師子奮迅之力)」

이란 이것이니라. 또 이 만다라(曼茶羅)를 정성껏 믿도록 하시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사자후(師子吼)와 같으니,

어떠한 병(病)인들 장해(障害)를 할 손가, 귀자모신(鬼子母神)·

십나찰녀(十羅刹女)는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수지

(受持)한 자를 수호(守護)하리라고 쓰였느니라. 행(幸)은 애염(愛染)과 같고

복(福)은 비사문(毘沙門)과 같이 되리라,

어떠한 곳에서 놀고 장난쳐도

탈이 없을 것이며, 유행(遊行)하여 두려움이 없음은 마치

사자왕(師子王)과 같으리라. 십나찰녀(十羅刹女) 중(中)에서도

고제녀(皐諦女)의 수호(守護)가 깊을 것이니라. 오직

신심(信心)에 달렸느니라. 검(劍)이라도 부진(不進)한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법화경(法華經)의 검(劍)은 신심(信心)이 강성한

사람만이 소용(所用)되는 것이며, 범에 날개가 돋힌 격이니라.

니치렌(日蓮)의 혼(魂)을 먹물에 물들여 넣어서 썼으니 믿으실지어다,

부처의 어의(御意)는 법화경(法華經)이며 니치렌(日蓮)의 혼(魂)은

바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묘락(妙樂)이 가로되

「현본원수(顯本遠壽)로써 그 명(命)으로 하다」라고 해석(解釋)하셨느니라.

 

교오(經王)님에게는 화(禍)도 전환(轉換)되어 행(幸)으로 되리라,

기필코 신심을 일으켜 이 어본존(御本尊)께 기념(祈念)하시라.

교오전답서 1124

제목은 빛이다. 「백천만년 동안 어두운 곳도 등불을 넣으면

한 순간에 밝아진다」라고.

기원한 순간부터 생명의 암흑은 사라지는 것이다. 인과구시 이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대확신의 기원이 중요하다. 신력·행력의 강도에 따라서

불력·법력이 나타난다.

기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투철한 기원이면 머지않아 반드시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제법실상이다.

그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확신해 가는것이 신심이다.

신앙이란 불멸의 희망이고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는 투쟁이다.

그 근본이 기원이다.

기원하면 희망이 확신으로 변한다. 그 확신의 일념이 삼천나열로

전개되어 희망을 성취해 나가 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 백 천만년 계속되었던 암흑도 밝아 지는 것이다.

반드시 태양은 떠오른다. 아니 이미 떠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오랜 세월 불행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체념이 습관화된 경우가 있다.

그러나 묘법만은 체념할 필요가 없는법이다. 나 같은 사람이 되겠느냐고

비하 하는 것은 자신의 불계에 대한 모독으로 통한다. 이 고뇌만은 어찌

할 수 없다고 처음부터 결정해 버리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기원이라 해도 갓난아이가 어머니 젖을 먹고 싶어하듯이 마음속의 생각을

 

그대로 기원하면 된다. 긴장하여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괴로우면

괴로운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있는 그대로를 어본존께 부딪쳐가면 되는 것입니다.

또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이렇게 되고 싶다’ ‘이렇게 하고 싶다’며 분명하게

정하고 기원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 다루기 힘든 사람,

 

미운 사람 그런 사람에게도 기원해 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려울 것이다.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전하고 기원해가면 반드시 바뀌어진다.

자신이 바뀌든가, 상대가 바뀌든가, 여하튼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길이 열린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실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런 사람을 기원해 줄 수 있는

자신으로 바뀌었다는 것 자체가 최고의 재산이 된다.

 

청년은 교학에 도전해 주기 바란다. 청년은 행동으로 자신을 단련해 주기 바란다.

 

그 기대를담아, 또한 평소의 감사의 생각을 담아서, 신심의 기본에 대해

몇 가지 말씀 드려 두고 싶다.

 

지금 여러분과 함께 삼좌의 근행을 행하고 어본존께 깊이 기념 드렸다.

어본존의 일을

경솔하게 논해서는 안되지만, 이곳은 불법유포의 역사가 얕은 미국 땅이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납득」과 「확신」을 주어 가는 것이 리더의 사명이다. 그래서

약간 비약이 있다고 생각하나 극히 간결하게 요점을 말해 두고자 한다.

 

본존(本尊)에는 근본존경의 의의가 있다. 인생. 생명의 근본으로서

존경하고 귀의해 가는 대상이 본존이다.그러므로 무엇을 본존으로 하는가에

의해서 인생이 근저적(根低的)

으로 결정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종래의 불교의 본존은 거의가 불상(佛像)이다.

또한 불화(佛畵)인 경우도 있다. 초기의 불교에는 불상은 없었으나, 후세에 서방의

그리스문화의 영향 아래, 서북인도(간다라지방)에서 불상이 탄생했다.

말하자면 실크로드 교류의 한 산물이다. 이러한 불상. 불화를 통하여

「부처」의 이미지를 민중은 받아들이고,

갈앙, 신앙의 마음을 일으켜 왔던 것이다.

 

그러나 日蓮대성인의 불법의 「본존」은 문자의 어본존이시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지.

 

영상의 결정이라고 하기 보다는 굳이 말하자면 영지(英智)의 세계, 어본불의 위대한

「지혜」의 최고이면서 존극의 표현이라고 배견된다. 이 점에서도 대성인의 불법의

「본존」은 종래의 불법의 본존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문자는 불가사의하다. 문자의 힘은 위대하다. 예를 들면 사람의 이름이 있다.

싸인을 한다. 그 문자에는 일단, 그 사람의 인격, 입장, 힘, 심신(心身), 역사, 인과,

 

그러한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이라는 한자로는 2개의 문자 속에 그 국토,

 

사람들, 동식물 기타 일체가 포함되어 간다. 그와 마찬가지로

남묘호렌게쿄의 제목에는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기(起)는 법성의 기.멸(滅)은 이는

법성의 멸」 (천태) 이라고 하듯이, 일체의 현상은 묘법의 나타남이다.

 

어본존에는 변전하는 대우주(제법)의 실상,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완벽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 우주의 실상이란 우리들 소우주의 경우도 완전히 똑 같은 것이다.

이것은 어서에 말씀하신 대로이다.

또 문자로 어본존을 도현 하시는 이유의 하나에 대하여 총본산

제65세 니치준 상인은,

 

회상(繪像)으로는 가령 십계까지 (문상교상에 집착된 색상장엄한 佛등,

말법의 올바른

본존은 될 없다)를 표현할 수 있어도 십계호구 이상 (진정한 백계천여 또한 사의

일념삼천 즉 자수용신이라는 어본불의 경계)은 도저히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배견된다고 가르치셨다.

 
728x90
반응형
LIST

'짧은 지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련해야 한다  (0) 2024.08.20
홍교의 사람은 어본불의 사자(使者),  (0) 2024.08.20
'괴로움의 인생'을 '대환희의 인생'으로  (0) 2024.08.20
신심의 가치  (0) 2024.08.20
제천의 수호  (0) 2024.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