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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품 강의 25
【본 문】
神通力如是 於阿僧祇劫 常在靈鷲山 及余諸住處 衆生見劫盡 大火所燒時
신통력여시 어아승기겁 상재영추산 급여제주처 중생견겁진 대화소소시
진 즈 리키 뇨 제 오 아 소 기 코 조 자이 료 주 센 규 요 쇼 주 쇼 슈 조 켄 코 진 다이 카 쇼 쇼 지
我此土安穩 天人常充滿 園林諸堂閣 種種寶藏嚴 寶樹多華果 衆生所遊樂
아차토안온 천인상충만 원림제당각 종종보장엄 보수다화과 중생소유락
가 시 도 안 논 덴 닌 조 주 만 온 린 쇼 도 카쿠 슈 주 호 쇼 곤 호 주 타 케 카 슈 조 쇼 유 라쿠
諸天擊天鼓 常作衆技樂 雨曼陀羅華 散佛及大衆
제천격천고 상작중기악 우만다라화 산불급대중
쇼 텐 갸쿠 텐 쿠 조 삿 슈 기 가쿠 우 만 다 라 케 산 부쓰 규 다이 슈
신통력은 이와 같다. 아승기겁에 있어서 항상 영추산 및 다른 여러
주처에 있다.
중생이 劫(겁)을 다해서 대화에 불타는 것을 볼 때도 나의 이 園林
(원림)과 많은 堂閣(당각)이 있어 여러가지 보배로 장엄하게 하며,
寶樹(보수)와 華果(화과)가 많아 중생이 유락하는 곳이니라.
제천이 天鼓(천고)를 치고 언제나 많은 기악을 울리며, 만다라화를
내리게 하여 부처와 대중에게 뿌린다.
【강 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행복이다. 종교와 신앙이 목표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역시 인간의 행복이다. 그러면 행복이란 무엇이며 행복한 인생이란 무엇인가.
일시적인 줄거움은 세상에 가득차 있다. 그러나 적당히 인생을 보내서 참으로 행복하
다면 그것도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삼세영원(三世永遠)의 차원에서 보면, 그런 행복은
환상과 같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허무하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행복의 실현을 가르친 것이 불법(佛法)이다.
도다(戶田)선생님은 절대적 행복경애라고 말씀하셨다. 이번에 공부하는 곳에는 그 진수
가 설해져 있다.
어본존은 언제나 나의 흉중에 있다
처음의 어아승기겁. 상재영추산. 급여제주처는 문상으로 말하면 아승기겁이라고 하는
오랜 세월에 결쳐 부처가 이 영추산에 상주(常住)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시방세계
어느 곳이든 출현한다는 뜻이다.
문저(文底)로 말하면 우리들 중생이 어디에 있거나 어느 때나 엄연히 어본존은 우리들의
흉중에 있다. 생명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항상 우리들과 함께 우리들 곁에 계신다.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 상재(常在)의 두 글자를 마음에 새겨 두기 바란다.
이 후의 중생견겁진의 경문부터는 두가지 정반대의 세계가 설해져 있다.
중생견겁진. 대화소소시 이것은 중생의 생명에 비친 고뇌의 세계이다. 중생은 세계가
멸할 때가 와서 대화에 불타고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고뇌와 공포에 찬 지옥
이다.
그런데 다음의 아차토안온이하에서는 그 양상이 일변한다. 여기에는 안온이 있고 약동
이 있다. 기쁨이 있고 빛남이 있다. 화려한 음악이 있고 풍부한 문화가 있다. 이것이
부처의 위대한 경애에서 본 진실한 세계이다.
이 두가지 세계는 실은 똑같은 세계이다. 같은 세계를 중생과 부처는 전혀 다르게 보고
있으며 다르게 느낀다. 니찌렌(日蓮)대성인은 중생이 보고 있는 대화란 "번뇌(煩惱)의
대화(大火)" (어서 757쪽)라고 말씀하셨다. 불타 없어지는 것은 세계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이다. 그것이 두려워 떨고 있다.
그것에 대해서 부처는 그대들은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 무엇을 한탄하는가. 진실은
그대들이 보고 있는 것과 전연 다르다고 타이르듯이 이렇게 말하기 시작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국토는 영원히 안온하다고.
이 한마디로 부처는 중생의 작은 경애를 깨뜨린 것이다. 일체중생을 전 인류를 부처의
대경애와 같이 높이려는 대자비의 말씀이다.
경애를 열면 사는 세계가 변한다.
이전경에서는 부처와 중생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설한다. 중생은 이쪽세계(사
바세계, 此岸)에서 오랜 세월동안 수행을 쌓아서, 부처가 사는 저쪽 세계(불국토, 彼岸)
로 건너지 않으면 안된다고 설한다. 그런데 법화경 수량품에서는 부처는 이 사바세계에서
영원히 법(法)을 설하고 있다. 이 세계가 불국토라는 것입니다. 부처도 중생도 같은 사바
세계에 산다고 설한다.
어서에는 "아귀(餓鬼)는 갠지즈강을 불로 본다. 사람은 물로 본다. 천인(天人)은 감로
(甘露,不死의 음료)로 본다. 물은 하나이지만 그것을 보는 중생의 과보(果報=경애)에
따라서 각각 다르다" (어서 1025쪽,취의)고도 말씀하셨다.
보는 사람의 경애에 따라서 변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경애가 바뀌면 살고 있는 세계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이것이 법화경의 사(事)의 일념삼천의 극리(極理)이다.
니찌렌(日蓮)대성인은 자신의 수난의 일생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일(日日).
월월(月月). 년년(年年) 난(難)이 거듭하니라. 사소한 난은 부지기수이고 대난이 네번인
데"(어서 200쪽)라고.
그 대난의 극한이라고 할 수 있는 사도(佐渡)유죄의 나날 속에서 대성인은 유연히 "유배
(流配)의 몸이지만 희열(喜悅)은 한량 없도다" (어서 1360쪽) 라고 외치셨다. 참으로
우주대의 경애에서 일체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마키구치(牧口)초대 회장도 "대성인님의 사도의 괴로움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고 옥중생활을 견디어 내셨다. 그리고 "마음 하나로 지옥에도 즐거움이 있습니다"라고
도 편지에 쓰셨다. 당시 검열에서 삭제된 말이다.
생명의 대경애. 여기에 인간의 극치가 있다.
신심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 我此土安穩.
지금 나는 도다선생님의 어느 날의 모습을 회상한다. 일찍이 소설 인간혁명에도 썼는데
도다선생님께서 경영하는 출판사가 고경에 빠져 마침내 잡지 휴간이라는 사태에 이르렀
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21세. 잡지 "소년 일본"의 편집장으로서 정열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갑
자기 휴간된 것이다. 제트기가 갑자기 멈춘 것과 같았다. 그것은 참으로 큰 충격이었다.
그런데 문득 도다(戶田)선생님의 모습을 보니 너무나도 태연자약하게 친구와 장기를
두고 계셨다. 이렇게 위급한 때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걸까 순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도다죠세이(戶田城聖)라는 인물을 절실하게 이해 했던
것이다.
'선생님은 건재하시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저 모습은 바로 나는 다시 싸우겠다
는 투쟁선언이시다.' - 그 감동은 지금도 선명하고 강렬하다.
어떠한 운명의 폭풍우가 덮쳐도 나의 투쟁심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신심의 마음
만큼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것이 아차토안온의 경애이다.
나는 도다선생님의 제자이다. 19세 때 선생님 슬하에 가서 오늘까지 약 반세기의 역사
를 세겨왔다. 수많은 폭풍가 거센파도를 타고 넘어 왔다. 그러므로 절대로 동요하지 않
는다.
도다선생님은 "본존님이 계신 당신의 집은 아차토안온입니다"라고 단언하셨다. 또 반드
시 그렇게 된다고 가르쳐 주셨다.
여러분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지면 안된다. 내 흉중의 성은 반석과 같다는 큰
기개와 경애로 부디 당당하게 전진해 주기 바란다.
생활의 城(성)을 마음의 보물로 장엄하게 하자
천인상충만부터 산불급대중까지는 여러분도 매일 독송하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
구(詩句)가 아니겠는가.
영상, 색채, 음향적으로 참으로 찬란한 이미지의 경연(競演)이라 해도 좋다. 법화경이
설하는 부처의 세계는 이렇게 즐겁고 명랑하고 활기차다.
이 부분을 강의하시는 도다선생님도 즐거운 듯이 보였다. 그리고 동지를 포용하는 듯한
자애의 목소리였다.
당시는 1945년에서 1950년대 초이다. 모두 가난했다. 여러가지 고뇌를 안고 있었다.
어느 쪽인가 하면 대화소소시의 모습이다.
그래서 조석으로 원림제당각. 종종보장엄......이라고 읽고 있어도 옛날 이야기로 생각
할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다선생님은 " 이 경문은 나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가난하더라
도 자신의 생활을 훌륭하게 원림제당각. 종종보장엄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고 가르쳐
주셨다.
"예를 들면 감귤상자에 작은 나무 몇구루를 심어놓고 매일 물을 주며 즐기면 훌륭한
원림(園林)이 아닌가. 그리고 당각(堂閣)도, 단칸방이라도 나의 성(城)이다 라는 확신에
서서 보배로 장엄하게 꾸민다. 자녀들이 우수한 성적을 받아왔다. 그것을 벽에 붙여놓
고 아버지 어머니가 즐기면 자녀들이라는 보배로 장엄하게 꾸민 것이 된다. 보배라는 것
은 여러분의 마음의 보배를 가지고 장엄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이 유머 풍부한 강의를 듣고 모두 마음이 후련하게 넓어졌다. "지금은 가난해도 즐거운
우리집. 이제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음의 보배로 장엄하게 꾸며 나아나가자.
또 나의 집을 반드시 행복의 보성으로 만들자"고 결의했던 것이다.
마음 하나로 변하는 것이 인생의 불가사의
단 한송이 꽃이라도 탁한 공기를 일변시킨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환경을 조금이라도
바꿔 나가자, 좋게 바꿔 나가자는 마음과 결의이다.
하물며 진지한 신심의 마음으로 싸운 사람의 인생이 활기차게 바귀지 않을리가 없다.
결코 행복하고 유복해지지 않을 리가 없다. 그것이 불법의 방정식이다.
마음 하나로 바뀐다 그것은 인생의 불가사의이다. 그러나 틀림없는 진실이다.
"장미나무가 가시를 갖고 있다고 화를 내서는 안된다. 오히려 가시나무가 장미 꽃을 피
우는 것을 기뻐해야 할 것이다"라는 말도 있다.(힐티편 - 마음의 양식)
보기에 따라 이렇게 변한다. 밝고 아름답게 탁 트인다.
대성인은 "일심(一心)의 묘용(妙用)" (어서 717쪽)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본존을 믿는 일심, 거기에서 불가사의하고 위대한 힘, 작용이 나온다. 내 가슴의 일심
이라고 하는 근본의 엔진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곧 삼천제법(三千諸法)의 톱니바퀴도 움직
이기 시작한다.
전부 변해간다. 좋은 방향으로, 희망의 방향으로 움직여 갈 수 있다.
또 예를 들면 우리지역의 회관, 연수도장을 장엄하게 하는 것도 종종보장엄이다.
수호회(화양회) 여러분, 지역의 여러분이 언제나 진심을 다해서 깨끗이 하고 여러가지
색의 꽃과 나무를 길러 아름답게 꾸며주시고 있다. 그 진심이야말로 최고의 보배이다.
더구나 이 법성에는 마음이 깨끗한 지용의 동지가 즐겁게 모여, 진지하고 올바른 인생
을 추구하고 희망고 용기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런 天人이 모이는 낙원이다. 경문대로의 모습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SGI자체가 이 경문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 모이고,
언제나 명랑하다. 원기 왕성하고 활기차다.
그것이야야말로 천인상충만이다.
학회의 전진과 여러분의 명랑하고 발랄한 전진이 우리 가정을, 지역 사회를, 세계를,
이 소중한 지구를 "종종보장엄"의 낙토(樂土)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부처의 위대한 경애로 싸일 때, 자신도 주위 사람들도 그리고 국토도 모두 행복과
희망의 빛으로 빛난다.
그것이 사(事)의 일념삼천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힘이다. 즉 여기에는
다이나믹한 변혁의 원리가 설해져 있는 것이다. 이 대법을 근본으로 해서 현실사회 속에
서 지역과 전세계를 행복의 낙토로 만드는 것이 광선유포 운동이다.
인간은 즐기기 위해 태어났다
"중생이 유락하는 곳이니라. 제천이 천고를 치고 언제나 많은 기악을 울리며 만다라화를
내리게 하여 부처와 대중에게 뿌린다"
여기에서도 영원한 행복의 길을 비추는 지혜의 한구절 한구절을 공부하자.
법화경은 중생의 마음에 묻는다. 또 중생이 스스로 묻고 생각하도록 종용한다. "도대체
우리들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라고.....
인간은 고통을 받고 고민하기 위해서 태어났는가?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도다(戶田)선생님은 자주 중생소유락(衆生所遊樂)의 경문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간은 즐기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고생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놀기 위해 왔다. 즐기기 위해 온 것이라고.
중생소유락(衆生所遊樂) - 중생의 낮은 인생관, 행복관을 뒤집는 멋진 말이다. 물론 이
유락(遊樂)은 향락적인 외관상의 즐거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외관상의 즐거움은 현실의 거센 파도 앞에서는 너무나 허무하다. 더구나 사바세
계는 감인세계(堪忍世界).
고뇌와 공포가 충만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참고 견디기 어려운가. 자신의
경애가 낮으면 결국 패배한다.
그러나 부처의 눈으로 보면, 중생이 가슴 속의 부처의 경애를 연다면 이 사바세계가 즉
중생이 유락하는 낙토이다. 이를테면 이 세상을 무대로 우리들은 즐겁게 산다는 인생극
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자재로 즐거운 유락의 인생을 열어라
니찌렌(日蓮)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일체중생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이외의 유락(遊樂)은 없느니라." (어서 1143쪽) 깊이 묘법(妙法)을 근본으로 했
을 때 이 세상의 고락(苦樂) 함께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제호미의 인생을 살 수 있다.
또 이 유락을 구태여 나누면 유(遊)는 인생을 자유자재로 살아 나가는 것, 낙(樂)은 인
생을 진심으로 즐기는 것, 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자기 생명의 경애이
다.
자연에도 극(劇)이 있다. 엄동(嚴冬)을 극복했을 때 바로소 봄의 기쁨도 크다. 계절의
변화가 있음으로써 일년은 아름답다.
인생도 그와 같다. 산이 있는가 하면 계곡도 있다. 그러나 강한 생명력과 풍부한 지혜가
있으면, 험한 산이 있기 때문에 등산을 즐길 수 있듯, 파도가 있기 때문에 파도타기를
즐길 수 있듯이 모든 인생의 고난도 전부 즐기면서 극복 할 수 있다.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자신이 되고 인생으로 된다.
그 자유자재의 금강불괴의 경애를 도다선생님은 절대적인 행복경애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니치렌대성인은 이 유락에 대해서 "우리들의 색법(色法)과 심법(心法), 의보(依報)
와 정보(正報)가 함께 일념삼천의 당체(當體)이고 자수용신(自受用身=스스로 광대한 법의
즐거움을 받아 활용하는 몸)의 부처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서 1143쪽, 취의) 라
고도 말씀하셨다.
진실한 행복이란 자신의 몸도 마음도 그리고 자신도 환경도 남들도 함께 신심의 공덕으로
풍요로와지는 행복이다.
자신의 행복만이 아니라 자타 모두의 행복을 기원하고 행동한다. 이것이 법화경의 마음
이다. 여러분이야말로 최고의 행복의 길, 유락의 인생을 걷고 있다.
희망과 행복의 妙音(묘음)을 연주하자
제천격천고(諸天擊天鼓) 천계의 사람들이 천고(天鼓)를 쳐서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천고란 본래는 천둥소리에서 유래한다. 인도에서는 천둥은 자혜의 비(雨)를 알리는
기쁜 음악이었던 것같다. 같은 차원에서 말하면 이것은 최고의 행복에 가슴이 뛰는
기쁜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상작중기악(常作衆伎樂) 천계(天界)의 사람들이 언제나 여러가지 많은 기악(器樂)을
연주하고 있습다. 도다선생님은 이 경문을 이렇게 가르쳐 주셨다
"언제나 음악이 울린다는 것은 라디오가 아닙니다. 아버지가 돌아와서 아 오늘은 유쾌
했다고, 부인은 부인대로
'여보! 오늘은 옆집 고양이가 야옹하고 울었어요' 아이들은 '학교 선생님이 가시는 것을
봤어요' 라고.. 그래서 한 가정이 웃으며 속삭이면서 지낸다면 언제나 기악을 울리는 것
이 아닐까요.
그런데 아버지가 찢어진 북소리같은 소리로 고함을 치고, 아내는 뻑뻑 거리며 아이들은
울어대면 이것은 그리 좋은 음악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순간 순간 하루하루의 생활이 자기의 상작중기악이 된다.
전부 생명의 경애 그대로의 음악이다.
어차피 살아 나가는데 우리들은 희망과 행복의 묘음(妙音)을 울려야 한다. 멋진 인생을
쟁취 했다는 개선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SGI에는 인생을 꿋꿋하게 살아가는 환희의 소리, 희망(希望)과 확신있는 소리가 언제나
울려 퍼진다. 실로 제천격천고. 상작중기악의 모습이다. 하나 하나가 사람들을 행복의
목소리로 감싸주는 경(經)이고, 성불사(成佛事) (어서 708쪽)를 이룬 모습이다.
니치렌대성인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사자후(獅子吼)와 같도다"(어서 1124
쪽)고 말씀하셨다. 우리들이 나날이 부르는 그 큰 음성은 비애와 한탄의 애음(哀音)을
깨뜨리고 민중 개가의 시대를 확실히 만들고 있다.
우만다라화(雨曼陀羅華).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만다라화가 하늘에서 쏟아진다는 것이다.
묘법의 세계에 내리는 천화(天華)이다.
이것은 묘법(妙法)에 사는 사람, 즉 충실히 신심을 관철한 사람이 반드시 행복과 복덕
의 꽃에 쌓여 제천에게도 축복받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또 예를 들면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했을 때 잘했다고 칭찬해 준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용약환희(勇躍歡喜)하여 더욱 힘이 나온다 이렇게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것
이 우만다라화에 통한다.
산불급대중(散佛及大衆). 복덕의 꽃은 부처에게도 중생에게도 평등하게 쏟아진다. 아무
런 차별도 없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처도, 중생도 같은 사바세계의 대지에 서 있다.
영원한 행복을 실현하는 무대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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