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日蓮대성인 시대의 제자들

池上兄弟(이케가미형제)

by 행복철학자 2024. 9. 18.
728x90
반응형
SMALL

池上兄弟(이케가미형제)

이케가미형제는 형을 우에몬다유무네나카(右衛門大夫宗仲), 동생을 효에사칸무네나가(兵衛志宗長)라고 하고 작사봉행(作事奉行:당시 조영 토목공사 등을 통활 하는 관직)으로서 막부에 근무했던 이케가미사에몬다유야스미쓰(池上左衛門大夫康光)의

아들이었다

형 무네나카는 신심 때문에 아버지 야스미쓰로부터 두 번에 걸쳐 의절을 당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신심을 관철하고, 동생 무네나가도 또한 형에게 동심(同心)하여 아버지를 간하여 드디어 아버지 야스미쓰를 입신하게 했던 것이다

■ 이케가미형제의 입신

이케가미가는 원래는 후지와라(藤原)씨의 일족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섭정 후지와라 다다히라(忠平)의 삼남 다다가타(忠方)로부터 시작되어 다히라노마사카도(平將門)의 난(亂)을 평정하기 위하여 쿄오토에서 내려온 다다가타가 무사시노국(武藏國)센조쿠이케(千束池: 현재의 도오쿄오에 있음)의 상수(上手)에 살았던 것에서 이케가미라는 이름을 가지고 씨(氏)로 했다고 한다

따라서 당시로도 상당한 신분의 가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종조 日蓮대성인은 1253년 입종선언 후 가마쿠라로 올라가셔서 마쓰바가야쓰(松葉谷)에 초암을 짓고 제종의 사의(邪義)를 파(破)하는 포교를 시작하셨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죠벤(成弁)이라는 학승(學僧)이 마쓰바가야스에 찾아와서 대성인께 귀의했다

후의 벤아사리닛쇼(弁아사리日昭)이다

닛쇼는 일찍이 수학(修學)의 여행을 하시고 있던 대성인이 히에이산(比叡山)에서 증의문답(證義門答)을 하셨을 때 그 곳에 거주하고 있어서 대성인의 학덕에 깊이 감명 했던 것이다

그 후 대성인이 입종 홍교를 시작하셨다고 듣고 지체없이 입문을 원했던 것이다

다음 해인 1254년에는 시모우사(下總)의 영주(平賀次郞有國)의 차남으로 닛쇼의 조카에 해당하는 기츠쇼마로(吉祥磨)라고 하는 12세의 어린아이가 대성인을 스승으로 득도했다

후의 다이고쿠아사리니치로(大國아사리日朗)이다

이케가미무네나카는 입종선언으로부터 3년 후인 1256년 역시 닛쇼의 조카라는 연고로 절복을 받아 입신했다고 전하여진다

같은 시기에 시죠깅고 신시요시하루 구토요시다카 에바라요시무네 등 유력한 신자가 앞뒤로 입신, 무네나카의 동생인 무네나가도 얼마 되지 않아 형의 절복에 의해 대성인께 귀의하게 되었다

■ 형 무네나카의 의절

한편 이케가미형제의 아버지 야스미쓰는 극락사(極樂寺) 료칸(良觀)의 지극한 귀의자였다

따라서 형제의 입신 당초부터 이에 맹렬하게 반대했을 것이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1268년 드디어 대성인의 타국침핍난에 대한 예언이 적중하여 몽고 국의 국서가 막부로 도달했다

대성인은 이 때를 맞아서 당시 막부 요인과 불교계의 대표자 11인에게 편지를 하여 공장 대결(公場對決)에 의해 법의 정사(正邪)를 결판 하여 신속하게 사종사의를 버리고 정법에 귀복하도록 재촉했다

그 중에서 극락사 료칸에게 보낸 편지에

『료칸성인의 주처를 법화경에 설해 가로되

「혹은 아련야에 있으면서 납의를 하고 공한에 있음」이라고 아련야는 무사라고 변역하니 어찌 日蓮을 참주하는 조(條) 주처(住處)와 상위 하느뇨 오로지 삼학(三學)과 흡사한 교적(矯賊)의 성인이니라 참성증상만으로서 금생은 국적이며 내세는 나락에 타재(墮在)함은 필정이니라』(어서 174)

고 료칸을 가리켜서 참성증상만의 악승(惡僧) 국적이라고 단정하시고 있다 그리고 이 3년 후인 1271년에는 日蓮대성인과 료칸

사이에 기우(祈雨)의 승부가 행하여졌지만 결과는 료칸의

대참패로 끝났던 것이다

그 이래 원념(怨念)을 품었던 료칸은 제종의 승들과 일을 꾸며 대성인의 일문(一門)을 참주하여 섬멸하려고 기도했다

그 결과 다쓰노구치법난이 일어나서 대성인은 마침내 참수의 자리에 앉혀졌던 것이다

또 이케가미무네나카가 의절되었던 배경에도 역시 이러한 사종문도의 책모, 즉 료칸에게서 아버지 야스미쓰를 움직이게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1275년 봄, 입신 후 20년이 되어 무네나카는 아버지 야스미쓰로부터 의절을 당했다

당시에 의절되었다고 하는 것은 거기에 따라서 사회적 신분도 박탈되고 또 전혀 수입의 길이 막혀 버린다고 하는 것이라 무네나카는 대단한 고경(苦境)에 처해지게 되었다

미노부에서 이 소식을 받으셨던 대성인은 바로「형제초」를 쓰셔서 이케가미형제와 그 부인들에게 보내어 신심을 격려하시고

있다

■ 대성인의 지남

이 어서의 머리에 日蓮대성인은 법화경이야말로 불법의 간심요(肝心要) 유일한 성불법이지만 이 불도(佛道)를 퇴전해서는 순차생(順次生)에 악도(惡道)로 떨어지고 이윽고 무간지옥으로 가라앉아서『항상 지옥에 처함이 원관(園觀)에서 놀 듯하고 여타의 악도에 있음이 자기의 사택과 같으니라』(어서 1080)라는 모습으로 되는 것을 설하셔서 불법이 중요한 이유를 지남 하시고 있다

또 그렇기 때문에 불도를 이루려고 할 때는 왕성하게 삼장사마(三障四魔)가 다투어 일어난다는 이치를 술하셔서 『제육천의 마왕이 혹은 처자의 몸에 들어가서 부모나 남편을 속이고 혹은 국왕의 몸에 들어가서 법화경의 행자를 위협하고 혹은 부모의 몸에 들어가서 효양하는 자식을 책(責)하는 일이 있느니라』(어서 1082)고 이번의 난이야말로 성불을 방해하려고 하는 마(魔)의 소행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과거의 방법(謗法)의 죄를 멸하려고 사견(邪見)의 부모에게 가책을 당하는 것이며 또 법화경의 행자를 미워하는 국주를 만났으니 경문에 명명하며 경문에 혁혁하도다 자신이 과거에 방법자였다는 것을 의심하지 말지어다

이것을 의심하여 현세의 경고(輕苦)를 견디기 어려워서 자부(慈父)의 책망에 따라 의외에도 법화경을 버리는 일이 있다면 자신이 지옥에 떨어질 뿐만 아니라 비모(悲母)도 자부도 대아비지옥에 떨어져 함께 슬퍼하게 된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느니라

대도심(大道心)이라 함은 이것이니라 각자는 힘껏 법화경을 믿어 왔으므로 과거의 중죄를 책하여 끄집어냈느니라.

비유컨대 철(鐵)을 공들여 달구어 치면 흠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돌은 태우면 재가되고 금은 태우면 진금이 된다 이번에야말로 진실한 신심이 나타나서 법화경의 십나찰도 수호하시게 되리라』(어서 1083)즉 범부가 부처로 될 때에는 과거원원겁으로부터의 비방정법의 중죄(重罪)를 멸해서 비로소 성불의 본회를 이루는

것이다,

이 때의 일은 형제가 지금까지 쌓아 왔던 공덕에 의해서 드디어 과거의 중업(重業)이 전중경수(轉重輕受)되어 나왔던 것이므로 꿈에도 이것을 의심하여 퇴전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철을 단련하면 숨었던 흠이 나타나지만 이것을 더욱 단련하면 강한 철로 되는 것처럼 이 어려움 속을 더욱 강성하게 신심을 관철하면 반드시 불천(佛天)이 가납하셔서 참된 신심의 자로 될 것이라고 말할 것도 없이 정진을 재촉하시고 있다

또 부모에의 효양에 대해서

『일체는 부모에게 따라야 하는 것이기는 하나 부처가 되는 길은 따르지 않는 것이 효양의 본(本)이로다 그러므로 심지관경에는 효양의 본을 설하시기를 기은입무위(棄恩入無爲) 진실보은자(眞實報恩者)등 운운 이 말의 뜻은 참된 도(道)에 들어가려면 부모의 마음에 따르지 않고 집을 나와 부처가 되는 것이 진실로 보은하는 것으로 되느니라 세간의 법에도 부모가 모반 등을 일으킴에는 따르지 않는 것이 효양이라고 하였는데 효경이라는 경에 쓰여 있느니라』(어서 1085)

즉 세간에 있어서는 부모에 따르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하지만 성불에의 도에 있어서는 거기에 반대하는 부모를 따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효양의 본으로 된다, 부모가 신앙을 방해하여 왔을 때 그 뜻에 따라서 신심을 버리면 오히려 불효자로 된다, 거꾸로 한 때는 부모의 뜻에 위배되어도 신앙을 관철하고 절복을 해서 진실로 부모를 구한다, 그것이 진실한 효양을 하는 것으로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대성인은 형제의 이체동심을 강조하시고 부인들에 대해서도 남편의 불도수행을 도우고 말대악세에 여인 성불의 표본이 되도록 지남 하신 후 『설사 어떠한 괴로운 일이 있을지라도 꿈으로 돌리고 다만 법화경의 일만을 사색하시라

그 중에도 日蓮의 법문은 옛날에는 믿기 어려웠으나 이제는 전전(前前)에 일러두었던 일이 이미 부합하므로 까닭 없이 비방하던 사람들도 후회하는 마음이 있으리라.

설령 차후에 믿는 남녀가 있을지라도 그대들과 바꾸어 생각할 수는 없느니라

처음에는 믿고 있었으나 세상이 두려워서 버리는 사람들은 헤아릴 수도 없고 그 중에는 오히려 본래 비방하는 사람들 보다도 더 강성히 비방하는 사람들이 또한 허다하니라』(어서 1088)

설령 현세에서 어떠한 괴로움이 있었다 해도 퇴전하여 후세에 맛보는 대고뇌에 비교했을 때 그것은 꿈속에 나오는 것 같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성불의 본회를 이루는 것을 원하여 신심에 면려하여야 할 것이다,

또 대성인의 가르침은 입종 당초야말로

아무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자계반역난(自界反逆難) 타국침핍난의 예언이 적중하여 진실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전비(前非)를 뉘우쳐 대성인에게 귀의하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참되고 순수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불법의 도리를 믿고 장마(障魔)가 닥치는 가운데 함께 인내해 온 이케가미형제와 그 이외의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도심자(道心者)이다, 그런고로 거듭 거듭 난을 만나서 뜻을 구부리지 않도록 술하시고 이 어서는 끝맺고 있다

日蓮대성인의 대자대비와 간절한 교도에 접한 형제와 그 부인들은 더욱더 신심의 뜻을 깊게 했을 것이다

이체 동심으로 아버지를 간하여 다음 해인 1276년 7월 간신히 무네나카의 의절은 풀려졌던 것이다

■ 재차 의절

형 무네나카의 첫 번째 의절이 풀려진 후 잠시 동안은 이케가미가도 표면상 소강 상태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아버지로부터의 의절이라는 난을 거치고 더한층 강성한 신심을 일으켰던 무네나카는 더욱 치열하게 절복을 행하고 무네나가도 또한 형에게 따랐던 것이다

이러한 일로 재차 장마의 다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예기하셨던 대성인은 1277년 8월 무네나가에 보낸 편지 가운데

『이로부터 후에도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조금도 해이함이 없을 지어다.

더욱 더 큰소리로 외치며 책할지어다, 설령 생명에 미친다 해도 조금도 위축되는 일이 없을 지니라』(어서1090)라고 더욱 강하게 방법을 책하여 절복을 행하여 가도록 격려하시고 또 설령 난이 신명에 미친다 해도 기가 꺽이지 않을 각오를 하도록 재촉하시고 있다

이렇게 해서 이 해 11월 다시 무네나카는 의절되었다

더구나 이번에는 형제 중에도 신심이 강성한 형 무네나카를 의절하고 한편으로는 자칫하면 아버지의 정에 흘러서 신심이 동요하기 쉬운 동생 무네나가에 대해서 가독(家督)을 양여한다는 유혹을 가지고 퇴전하게 하려는 등 아버지 야스미쓰는 난책을 내었던 것이다

무네나카는 지난번과 같이 대성인의 단월로서 꿋꿋하게 살아갈 각오도 단단하고 의연하여 흔들림이 없었다

한편 무네나가도 미노부에 계신 대성인께 여러 가지 공양을 보내는 등 변함없는 신심의 뜻을 나타내고는 있었지만 대성인은 그 신앙 가운데 조그마한 동요, 틈이 있음을 통찰하셨을 것이다

무네나가에 대해 엄격하게 질책하는 편지를 보내고 있다

『이번에는 귀하는 필시 퇴전하시리라고 생각되나 퇴전하는 것을 이러니 저러니 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로다

다만 지옥에서 日蓮을 원망하시는 일이 없을 지니라 그 때는 나도 모르겠소이다 천년 묵은 솔새도 일시에 재가되고 백년의 공도 한마디 말로써 무너짐은 법의 도리로다 법화경의 적이 되는 부모를 따르고 일승(一乘)의 행자인 형을 버린다면 부모에게 효양이 되겠느뇨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 귀하는 퇴전하리라고 생각되느니라』(어서1091)

당신은 이번에 반드시 퇴전할 것이다, 그것을 어떻다고 말할 생각은 없지만 퇴전해서 지옥의 괴로움을 받는다 해도 결코 日蓮대성인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신심하여 쌓아 온 공덕을 일시에 모두 물로 흘려 버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유일한 성불법인 법화경의 적인 부모를 따르고 법화경의 행자인 형을 버려서 부모를 구할 수 있겠는가 라고 엄하게 꾸중하시고 지금 작은 방심이 반드시 후의 대방법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가르치시고 더욱 『백에 하나 천에 하나라도 日蓮의 의(義)를 따르려고 생각한다면 부모를 향하여 단언하시라 부모이기에 당연히 순종해야 하겠으나 법화경의 적이 되셨으므로 따르게 된다면 오히려 불효의 몸이 될 것이므로 버리고 형을 따르겠나이다.

형을 버리신다면 형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옵소서 하고 단언하시라

조금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지 마시라

과거원원겁부터 법화경을 믿었으나 부처가 되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로다』(어서 1091)

백에 하나 천에 하나라도 대성인의 말씀에 따르려는 뜻이 있다면 자신은 형과 같은 마음이다,

형을 의절하신다면 자신도 형과 행동을 같이 한다고 아버지에게 단언하시라, 당신이 과거원원겁부터 법화경을 믿으면서 끝내 성불하지 못했던 것은 이와 같은 난에 만났기 때문이다,

대성인의 편지를 받은 무네나가는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는 몸이 되는 것을 각오하시라 라는 엄격한 지남에 흔들려 스스로의 신심을 깊이 반성했을 것이다,

그리고 문면(文面)은 엄격해도 진의(眞意)는 무네나가에의 깊은 자비와 기대를 나타내는 것을 생각하고 강한 결의를 분기했다

무네나가는 미혹을 버리고 결연히 부모를 간했던 것이다

아버지 야스미쓰도 이것에는 깊이 생각했다고 보인다

자식을 두 사람이나 잃어버릴 수는 없었던 것일까, 다음 해인 1278년 봄 두 번째의 의절도 풀었던 것이다

대성인도 이 소식을 듣고 대단히 기뻐하셨다

지체없이 편지를 보내셔서 무네나카의 의절이 풀렸다는 것은 오로지 무네나가의 신심의 덕택이다, 대성인의 지남대로 형을 도와서 아버지 야스미쓰를 간하여 신심을 관철했던 것이 더디어 료칸등의 책모에 의한 삼장사마를 물리친 것이다고 칭찬하시고 있다

『타인은 차치하고 부모와 부부와 형제가 다투는 일이 엽사와 사슴, 고양이와 쥐 매와 꿩과 같다고 보이느니라 료칸 등의 천마가 붙은 법사들이 부친 사에몬노다이후전을 속여서 귀하들 두 사람을 없애려고 했는데 귀하의 마음이 현명하여 日蓮의 훈계를 받아들였으므로 두 개의 바퀴가 수레를 도웁고 두 발이 사람을 지탱하고 있듯이 두 날개가 날듯이 일월이 일체 중생을 돕듯이 형제의 힘으로써 부친을 법화경에 들어오시게 한 계책은 오로지 귀하 자신에게 있느니라』(어서 1091)

■ 아버지 야스미쓰의 입신과 서거

그런데 日蓮대성인은 무네나카의 두 번째 의절의 때

『조수의 밀물과 썰물, 월출과 월입, 여름과 가을과 겨울과 봄과의 경계에는 반드시 상위 하는 일이 있으니 범부가 부처로 되는데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반드시 사장사마라고 하는 장해가 나타나는데 현자는 기뻐하고 우자는 물러남이 이것이니라』(어서 1091)

고 말씀하셔서 이 때의 난이야말로 성불을 방해하려고 다투어 일어난 삼장사마이다, 따라서 이 마를 타넘으면 반드시 대원이 성취된다고 하는 것을 시사하시고 있다

1278년 두 번째의 의절이 풀려져 멀지않아 형제는 20년래의 신심에 반대를 계속한 아버지 야스미쓰를 드디어 대성인에게 귀의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의 의절로부터 3년째의 일이었다

야스미쓰의 입신 후 이케가미가는

『무엇보다도 에몬노다이후사칸과 귀하의 일 아버지와의 사이도 그렇고 주군의 신임도 그렇고 대면하지 않고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노라』(어서 1099)

고 부자 형제의 사이도 원만하고 주군으로부터도 신뢰받고 행복한 나날이 었다고 들려 온다

이렇게 해서 다음 1279년 2월 야스미쓰는 대성인의 신자로서 안락하게 서거했던 것이다

형제의 입신이래 20여 년 료칸에게의 귀의를 바꾸지 않고 신심에 반대를 계속했던 야스미쓰였지만 두 번의 의절을 거쳐서 그 직후 대성인에게 귀의하게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 다음해에 임종을 맞이했던 것을 생각할 때 바로 두 번의 의절은 형제의 신심을 연마시키고 더하여 아버지 야스미쓰를 성불에로 이끌려고 일으켰던 삼장사마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케가미형제는 드디어 아버지의 입신을 임종에 맞추어 최고의 효양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었다

■ 대성인을 받들고

아버지 야스미쓰 서거 후 이케가미형제는 형 무네나카가 가독을 이어 형제의 힘을 합해서 작사봉행의 임무에 노력했지만 1251년 봄 참주에 의해서 형제가 종사하고 있었던 팔번궁 조영공사에서 빠지게 되었던 일이 있었다

이 때에도 대성인은「팔번궁조영사」라는 어서를 보내어 간절하게 지남을 하시고 있다

우선 형제는 2대에 걸쳐서 불려져서 주군에 대하여 은혜가 있는 몸이다

설령 한번 정도 약속과 다른 일이 있었다 해서 무슨 원망하는 일이 있겠는가 하물며 현인이라면 말을 한다 해도 일응 사퇴하는 것이다

더욱이 팔번대보살의 본지는 아미타불이다, 그렇다 하고 염불 신앙을 파절하는 이케가미형제가 팔번궁을 조영했다면 세간의 사람들의 비방 중상의 좋은 재료로 될 것이다, 그런고로 제천선신의 계책에 의해서 공사를 벗어나게 했던 것일까 라고 교시하시고 있다

이와 같이 이케가미형제는 언제나 대성인으로부터 지남을 받아 인생의 본사(本師)로 받들어 신앙을 매진하고 있다

■ 日蓮대성인의 입멸

1283년 9월 日蓮대성인은 지금까지 수많은 대법난을 만나면서도 30여년에 걸쳐서 사신홍법(死身弘法)의 투쟁을 계속해 오셨던 것에 의해서 차츰 신체가 쇠약하여져 제자 분의 원(願)에 의해서 히다치(常陸)의 온천으로 가시게 되었다

미노부를 출발했던 것은 9월 8일, 18일에 2~3일의 휴식이라는 것으로 대성인은 이케가미무네나카의 저택에 머무르셨지만 용태는 좋지 않았고 이로부터 한달 동안 이케가미의 저택에 계시게 되어 여기서 입멸의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인도 응탄의 석존이 입멸하신 것은 법화경을 설법했던 영취산으로부터 축인(丑寅)의 방향(동북쪽)에 해당하는 사라림의 순타(純陀)의 집이었지만 지금 다시 日蓮대성인도 입멸을 맞이하여 미노부를 나오셔서 축인의 방향에 해당하는 이케가미로 오셨던

것이다

또 순타는 목공이었다고 전하여 지지만 이케가미형제도 역시 공장(工匠)으로서 막부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바로 엄연한 법의 이치가 느껴진다

이렇게 하여 10월 13일 日興상인을 사법(嗣法)으로 정하셨던 대성인은 같은 날 진시(辰時:오전 8시) 안상하게 멸불멸(滅不滅)의 상(相)을 나타내셨던 것이다

다음 14일 유제(遺弟)와 신자들에 의해서 장의가 집행되었지만「종조천화기록」에 의하면 형 무네나카는 시죠깅고와 함께 기(幡)를 가지고 동생 무네나가는 태도(太刀)를 가지고 장송에 참가하고 있다

그 후 형제의 소식은 확실하지 않지만 무네나카는 1293년, 무네나가는 1283년 그 생애를 끝냈다고 전해진다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