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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에 대하여

재공양(財供養)’과 ‘법공양(法供養)

by 행복철학자 2024.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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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공양(財供養)’과 ‘법공양(法供養)

공양은 예부터 여러 가지로 분류되고 있지만 크게 ‘재공양(財供養)’과

‘법공양(法供養)’으로 나뉘어진다.

‘재공양’이란 음식물, 향, 꽃 등 여러 가지 재물을 공양하는 것이다.

또 ‘법공양’이란 경(經)을 독송하거나 법(法)을 찬탄하는 일이며,

부처의 법을 넓히고 사람들을 가르쳐 인도하는 것이다.

법화경에는 부처 및 법화경을 수지(受持)·실천하는

사람에 대한 공양이 여러 곳에 설해져 있다.

<법사품(法師品)>에는 ‘오종(五種)의 묘행(妙行)’ 즉 ① 수지(受持) ② 독(讀) ③ 송(誦) ④ 해설(解說) ⑤ 서사(書寫)라는 ‘법공양’에 해당하는 실천과 ‘십종공양(十種供養)’이 있다.

또한 ① 화(華) ② 향 ③ 영락(瓔珞-귀금속이나 보석의 장식) ④ 말향‘(抹香, 분향) ⑤ 도향(塗香) ⑥ 소향(燒香) ⑦회개(繪蓋), 당번 ⑧ 의복(衣服) ⑨ 기악(伎樂) ⑩합장(合掌)이라는

‘재공양’에 해당하는 실천을 권하고 있다.

동품(同品)에서는 불멸후(佛滅後)의 악세(惡世)에 있어서 ‘오종의 묘행’이나 ‘십종공양’을

실천하는 사람에 대해서 “이 사람은 일체 세간의 사람이 우러러 받들어야 할 사람이다.

바로 여래(如來)를 대하듯이 이 사람을 공양해야 한다”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그 이유로 “말법(末法) 악세(惡世)에 묘법(妙法)을 광선유포하는

사람은 ‘여래의 사자’이므로”라고 하여 말법 광선유포에 힘쓰는 사람에게는

부처와 같이 공양해야 한다는 것이 설해져 있다.

법화경과 법화경 실천자에 대한 공양의 공덕은 참으로 크다.

<다카하시전답서>에서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다.

“일겁(一劫) 동안 석가불을 종종으로 공양한 사람의 공덕과, 말대의

법화경 행자를 수유(須臾)라도 공양한 공덕과 비교 하건대, 그 복이 또한

그보다 더하다고 하여, 법화경 행자를 공양하는 공덕은 훌륭하니라”(어서 1457쪽) 라고 있다.

말법의 법화경 행자란 별해서는 니치렌 대성인을 가리킨다.

그리고 현재 대성인의 말씀대로 신명(身命)을 걸고 광선유포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오직 SGI 뿐이다.

그러한 점에서 보면 한국SGI야말로 현재에 있어서 공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승가(僧伽), 교단이라 할 수 있다.

SGI가 회원으로부터 공양을 받는 것에 대해서 제66세 닛다쓰(日達)

상인은 다음과 같이 지남(指南)하셨다.

“예부터 신사(神社) 불각(佛閣)에는 돈 받는 상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종(正宗)은 놓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방법(謗法)의 보시를 받지 않는다는 것에서 온 것이므로 올바른 신자의

공양은 당연히 받는 것입니다. 공양을 받았다고 해도 SGI 역시 하나의 종교단체입니다.

공양을 받고 혹은 기부(寄付)를 모집한다. 그것은 모두 자신의 회원, 신도로부터

받는 것이므로 조금도 부끄러운 일도 아니며, 세간(世間)에서 비판할

성질의 일도 아닌 것입니다”라고.

그러므로 한국SGI ‘광포부원가입신청’이야말로 광포 추진의 기반이 되는 중대한 의의를 가지며 대성인의 어의(御意)에 합당한 공양이므로 대공덕이 있는 것이다.

 

謗法에 대한 공양은 지옥의 因

 

이와 반대로 모처럼 공양을 해도 상대가 정법(正法)에 적대하는 방법의 무리라면

오히려 악을 증장시켜서 불행해지고 재난의 근원이 된다.

 

<교기시국초>에서 대성인은 다음과 같이 방법에 대한 공양을 훈계하시고 있다.

“법화경을 비방(誹謗)하는 자는 정상말(正像末)의 삼시(三時)에 걸쳐 지계(持戒)의

자도 무계(無戒)의 자도 파계(破戒)의 자도 공히 공양하지 말지어다, 공양하면

반드시 나라에 삼재칠난(三災七難)이 일어나고 공양한 자도 반드시

무간대성(無間大城)에 떨어지게 되느니라”(어서 439쪽)

방법에 대한 공양은 삼재칠난을 초래하고 자신도 타지옥(墮地獄)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성인은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에서 방법에 대한 공양을

정지하도록 호소하셨던 것이다.

‘법주본불론(法主本佛論)’ 등의 사의(邪義)로 대성인의 불법(佛法)을 파괴하고

광선유포를 방해하며 방법의 승이 된 닛켄종에 대한 공양도 역시 반드시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된다.

信心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대성인은 <백미일표어서>에서 공양의 정신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다음과 같이 교시하셨다.

“범부(凡夫)는 지(志)라고 하는 문자를 심득(心得)하여 부처가 되는데, 지(志)라고 함은 무엇인가 하고 위세(委細)하게 생각해 보니 관심(觀心)의 법문이니라, 관심의 법문이라고 함은 무엇인가 하고 밝힌다면, 단지 한 벌 입고 있는 옷을 법화경에

바치신 것이· 몸의 살가죽을 벗기는 것이 됩니다.

굶주린 세상에 이것을 버리고 나면 오늘의 목숨을 이어갈 것도 없을 때 단지

하나밖에 없는 양식을 부처에게 바치는 것은 신명을 부처에게 바치는 것으로 되나이다.

이것은 약왕이 팔꿈치를 태우고·설산동자가 몸을 귀신에게 주신 것에도·뒤지지 않는 공덕이므로·성인을 위해서는 사공양(事供養)·범부를 위해서는 이공양(理供養)·지관(止觀)의 제7의 관심의 단파라밀(檀波羅蜜)이라고 하는 법문이니라.”(어서 1596쪽)

본존님을 위해서 아끼지 않고 공양한다고 하는 정신이야말로 중요하다.

 

그 진심이 큰 공덕이 되는 것이다.

또 <제법실상초>에서는 “니치렌(日蓮)을 공양(供養)하고 또 니치렌의 제자단나(弟子檀那)가 되심은 그 공덕을 부처의 지혜로써도 다 헤아리지 못하느니라”(어서 1359쪽)

말법에 있어서 대성인을 존경하고 공양 드리며 문하(門下)로서 광포에 힘쓰는

그 공덕은 부처의 광대한 지혜로도 헤아릴 수 없다고 가르치시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흔들리기 쉽기 때문에 자칫하면 올바른 실천을 게을리하기 쉬운 것이다.

<니이케어서>에서는 “어쩌다가 인간으로 태어날 때에는 명문명리(名聞名利)의 바람은 심하여 불도수행(佛道修行)의 등불은 꺼지기 쉬우니라.

무익(無益)한 일에는 재보(財寶)를 다 써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불법승(佛法僧)에게 약간의 공양을 하는 데에는 이를 귀찮게 생각하니 예삿일이 아니로다. 지옥의

사자(使者)가 분발하는 것이니 촌선척마(寸善尺魔)란 이것이니라.”(어서 1440쪽)

범부라는 것은 세간의 풍조에 끌려 자칫 낭비를 하기 쉬워서 공양할 마음이 생기지 않게 되기 쉽다고 지적하시고 그것은 지옥의 사자가 다투어 나타난다라고 교시하시고 있다.

신심의 발로에서 나온 공양이 중요

 

제56세 니치오(日應) 상인은 <화의초(化儀抄)>에서 공양은 모두 니치렌(日蓮) 대성인에 대한 공양이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다.

“사람의 뜻을 본불님·대성인께 전해드리는 심중(心中)이 중요하니라.

일지반전(一紙半錢)도 백관천관(百貫千貫)도 다소(多少)간에 뜻을 나타낸

것이니라. 나타내는 바의 뜻은 전혀 다르지 않는 것이니라.”

공양하는 뜻을 본불님·대성인께 전해드린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양이 적고 많음에 상관없이 모두 그 사람의 뜻의 나타남이기 때문에

소중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제59세 니치코(日亨) 상인은 이 <화의초>의 글에 입각해서 공양의 많고

적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석(注釋)하시고 있다.

 

“나타난 공양의 물질의 대소경중(大小輕重)은 대개는 능시(能施)의 사람의 부력(富力)의 정도에 따르는 것이니, 일국일성(一國一城)의 대명(大名) 또는 부한(富限)의 이름이 떨친 장자(長者)에 있어서는 백관천관을 바친다 해도 아직 뜻이 두터운 것이 아니로다. 천한 나무꾼이나 만안(灣岸)의 어부에 있어서는 일지반전을 바쳐도 뜻이 박함이 아니로다.”

 

재력이 있는 사람은 많은 공양을 해도 반드시 신심이 두텁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또 가난한 사람은 조금밖에 공양할 수 없다고 해도 그것으로 신심이

약하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소중한 것은 그 신심의 뜻이 두터운가 엷은가이며 신심의 발로에서 나온 공양인 것이다.

본존님에 대한 신(信)을 한층 더 깊게 하여 진심 어린 공양정신으로

광포부원가입신청에 스스로 참가하여 광포의 추진을 도모해 가자.

◎ 이케다 SGI회장 스피치에서 배운다

 

마음에 ‘왕자의 복덕의 씨앗’을

 

덕승동자는 ‘곧은 마음’으로 아소카 대왕으로 태어났다

니치렌(日蓮) 대성인이 16세의 난조 도키미쓰(南條時光)에게 보내신 편지가 있다.(중략)

그 어서 속에 이러한 유명한 말씀이 있다.

“득승(得勝)·무승(無勝)의 이동자(二童子)는 부처에게 모래의 떡을 공양(供養)해

올리고 염부제(閻浮提) 삼분지일(三分之一)의 주(主)로 되었으니 소위 아육대왕(阿育大王)이 이 사람이니라”(어서 1508쪽) - (옛날) ‘득승(得勝)’과 ‘무승(無勝)’이라는

이름의 두 아이가 모래로 만든 떡을 부처에게 공양했다.

그리고 (그 공덕에 의해 후에) 전 세계 3분의 1을 다스리는 주인으로 되었다.

아소카 대왕이라고 불리는 대왕이 이 사람이다.

아소카 대왕은 세계제일의 왕이다. 나와 대담한 세계의 대부분의 식자는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아소카 대왕을 들고 계셨다.

 

‘민중에게 공헌하는 사람’이 왕자

 

아시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아소카 대왕은 지금부터 2천2백년 전의

인도의 대정치가이며 대지도자이다. 세계의 역사에 빛나는 ‘왕자 중의 왕자’이다.

‘왕자’ 또 ‘왕’이란 단순히 지위가 높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본래는 ‘민중을

위해 사회를 위해 최대로 공헌하는 사람’을 ‘왕’이라고 한다. 그것이 후에 체계가

굳어져 지위가 높은 것만을 일컫는 경우가 된 것 같다.(중략)

이 아소카 대왕이 왜 위대한 왕자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과거세에 그가 유년기 시절 모래장난을 하고 있을 때 마침 석존이 우연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 때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을 담아 모래 떡을 석존에게 드렸다.

모래이므로 먹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청정한 진심’이 ‘복덕의 씨앗’으로 되어

세계를 풍요롭게 평화롭게 하는 대왕이 되었다고 설하고 있다.

 

마음이야말로 중요하다

 

‘마음이야말로 중요’한 것이다. ‘곧은 마음’ ‘청정한 마음’이 있으면 모두 공덕으로 바뀌어 간다. 그 반대로 자신을 파괴하는 ‘약한 마음’ ‘비열한 마음’으로 되는 사람도 있다.

전부 ‘마음’으로 결정된다. 그러므로 불법에는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헛됨은

없다.

광선유포를 위해, 인류를 위해서 학회에 모인 여러분이다. 삼세(三世)의 생명상으로 논하더라도 모든 행동이 장래 수십배, 수백배, 수천배로도 되어 찬란하게

공덕의 꽃을 피어갈 것은 틀림없다.

이것을 확신하는 것이 신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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