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蓮대성인 시대의 제자들
比企能本(히키요시모토)
행복철학자
2024. 9. 27.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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比企能本(히키요시모토)
히키다이가쿠사부로요시모토(比企大學三郞能本)는 가마쿠라시대 초기의
무장(武將) 히키요시카즈(比企能員)의 아들이었다고 전해진다
요시카즈는 겐요리조(源賴朝)의 거병(擧兵) 이래 계속하여 전공을 세우고
딸 와카사노쓰보네(若狹局)가 2대 장군 요리이에(賴家)의 아들 이치반(一幡)을
낳았기 때문에 외척으로서 권세를 떨치고 호죠씨와 대립했다
1203년 요리이에가 병이 들었을 때 이치반과 함께
요리이에의 동생 사네토모(實朝)에게 가독분할이 된 것을
분하게 생각하여 사네토모의 외척인 호죠씨를 없애려고
했는데 거꾸로 모살(謀殺)되고 이 때 아들 무네카즈 이치반도
토벌되었던 것이다
히키가 몰락 후 학문을 뜻하여 쿄토에서 공부한 요시모토는
유관(儒官)으로서
막부에 종사하게 되어 가마쿠라로 옮겨 살았다
1260년, 58세 때 오오타죠묘 소야교신등과 같은
시기에 대성인께 귀의하고 있다
대성인으로부터의 신망도 의외로 두텁고 입정안국론
기초의 때 미리 초고를 보여주었던 일도, 혹은 교정을
의뢰하고 그것이 연(緣)으로 되어 귀의했다고도 전해진다
이래 부부 함께 신앙에 힘쓰고 있었던듯 하고 대성인이
이즈유죄를 사면받은 다음 해인 1264년 4월 17일에
「월수어서」를 받고 있다
이 어서는 요리모토의 부인으로부터의 질문에 답하셨던
소식문으로 질문 내용은
「법화경 일부독송과 일품독송 어느 쪽을 취하여야 합니까」
그리고「월수(月水) 때에
불도수행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라는 것이었다
日蓮대성인은 우선 법화경 수지의 공덕을 술하신 후 일상의 소작으로는
방편 수량의 2품을 독송하도록, 또 월수 때는 몸이
부정하다고 해서 수행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본전에 단좌하여 창제행에 힘쓰도록 교시하셨다
더욱이 1275년 7월, 미노부의 대성인으로부터「다이가쿠사부로전어서」가
보내졌다 별명이「권실위목(權實違目)」이라고 불려지는 이 어서에서 대성인은
외도 구사 성실 율 삼론 법상 화엄 진언 등 각종의 교의를 들고 특히 진언종의
벽견(僻見)을 엄하게 파절하시고 있다
그리고 대소 권실의 상대를 말하고 실경(實經)인
법화경을 믿는 것이 불법의 계(戒)를 가지는 것이라고 신심을
격려하시고 있다
또「시죠깅고전답서」에
『다이가쿠전(大學殿)과 에몬노다이우전(衛門大夫殿)의 일들은 말씀한대로
했으므로 기원이 이루어진듯 보이도다』(어서 1151) 라고 있고
1276년경 시죠깅고등과 같은 양상인 소령교체 혹은 몰수 등 신앙
때문에 부당한 탄압을 받았던듯 하다
이에 대하여 소송을 하여 소령을 돌려받으려고 하는
움직임조차 있었지만 대성인은 이것을 제지하셨다
이러한 상황 중에서 하기리사네나가(波木井實長)가
日蓮대성인은 불법상의 스승이지만 소송은 세간의
일이라고 해서 굳이 따르지 않았던데 대하여
히키요시모토는 이케가미무네나카와 함께 대성인의
지남에 따라서 소원이 성취되었던 것이다
이 순진한 자세에 의한 것인지 생애에 걸쳐서 퇴전하는
일 없이 신앙을 관철하고 있다 뒤에 가마쿠라 히키다니(比企谷)에
묘혼지(妙本寺)를 건립하고 출가하여
혼교인니치가쿠(本行院日學)라고 불렀다
1286년 2월, 89세로 타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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