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부를 위한 지도
내게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마라
행복철학자
2024. 9. 24.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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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마라
주나라 태공망 강태공
지지리도 운이 없는 놈이라고 하늘을 원망하지 마라
나는 수십년간을 낚시를 벗하며 때를 기다리는 동안 조강지처 마져
나를 버리고 도망가 버렸음에도 울분을 토하지 않았다.
머리가 백발이 되고서야 문왕 서백을 만나 은나라 주왕을 멸하고 주나라를 세웠다.
나는 숱한 세월을 낚으며 늙은이가 되었지만 결코 하늘을 원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고 그 인내의 결실이었던 내일생에 단한번의 기회로도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한나라 회음후 한신장군
얼굴이 못생겨서 되는일이 없다고 스스로를 푸념하고 비하하지 마라
나는 어렸을때 보잘것 없는 외모때문에 업신당하고 불량배의 가랑이를
기어 건너가는 치욕을 당했고 빨래터 노파의 밥을 빌어 먹기도 했다.
초패왕 항우는 나의 볼품없는 용모를 업신여겨 범증의 천거를
번번히 거부하며 십수년간이나 말단 벼슬아치 집극랑 자리를
맴돌게 했지만 참았다.
항우에게 실망하고 유방 밑으로 들어가서 연전연승하며 해하에서
항우를 완전히 섬멸하고 천하를 유방에게 안겨줄때까지
갖은 수모를 견뎌 내야했다. 초라하기 짝이없는 몰골뒤로
천하웅비의 뜻을 감추고 뭇사람들의 갖은 야유와 모욕을 참아내며
기어코 전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 되었다.
사기의 작가 사마천
한때 자존심과 명예를 무시당했다고 좌절하지마라
나는 나의 친구 이릉장군을 변호하다 무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생식기가 짤리는 궁형의 치욕을 당하고도 목숨을 버리지 않았다.
당시 궁형의 수치를 못참고 자살하는 자가 많았으나 참았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못다 이룬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나는 거세된 남자가 모진 생명을 끈질기게 이어 간다는 온갖 조롱을
참아내며 옥중에서도 저술을 계속하여 마침내 완성한
(사기)는 불세출의 역사가로 재탄생하게 했다.
명나라 태조 홍무제 주원장
집안 배경이 나빠서 요모양 요꼴로 지낼수 밖에 없다고
변명하지마라. 나는 오랑캐의 나라 원대말기 안휘성 빈농의
한족 집안에서 태어나 17살에 고아가 되어 탁발승으로서
가난과 기근에 찌든 험악한 세상과 맞섰다. 전란통에 비적 무리의
졸개가 되었을때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그후 혁혁한 전과를 올린 공으로 반란군의 2인자가 되어
원나라 몽골군을 중원에서 몰아낸 후에도 양반 사대부집안의 멸시와
견제속에서 시달려야했다. 나는 송곳하나 꼿을 땅이 없었던
빈농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고아가 되었을때 조차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으며
결국 몽골군을 몰아내고 한족천하를 회복한 명나라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중국유일 여황제 측천무후
여자로 태어나서 하고픈 일을 못한다고 푸념하지 말라
나는 아버지 무사확의 후처소생 둘째딸로 태어나 갓 14살때 최말단후궁
재인이 되어 당태종 이세민을 가무로써 섬겼다. 황궁생활 초기
나의 경쟁자는 여자였으나 비구니로 물러 앉았다가 태종의 아들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황궁으로 돌아와 4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출산하며
황후가 된 후 부터 나는 남자들과 힘겨운 전쟁을 시작했다.
장손 무기를 내쳤고 상관의를 처형하였으며 심지어 나의 4명의 아들마져
차례로 버렸다. 내나이 67살에 여자든 남자든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철옹성을
만들고 나서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제 성신황제가 되어
15년간 천하를 다스렸다.
청나라 말기 거상 호설암
돈이 없어서 재기할 수 없다고 낙담하지 마라
나는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일찍 죽는 바람에 학업도 못마치고
상단에 들어가 똥오줌 치우고 마루를 닦으며 잔심부름으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빈손으로 사업을 일으켰고 다시 빈털털이가 되는 과정을 겪고
또 겪었지만 내가 살아 있는한 아무리 빈손일지라도 언제든지 사업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한푼도 가진게 없는 가운데도
스스로의 재기를 믿었고 내게 없는 것을 메꾸어주는 인재를 대함에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큰 상인이 되는데 돈보다는 사람이 더욱 소중함을
일찍이 깨달았던 나는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며 장사의 신
상성이 되었다.
옮겨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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