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蓮대성인 시대의 제자들
波木井實長(하기리사네나가)
행복철학자
2024. 9. 18.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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波木井實長(하기리사네나가)
하기리사네나가(波木井實長), 정확하게는 난부로쿠로사네나가(南部六郞實長)는
가이(甲斐) 겐(源)씨의 후예라고 전해진다
가슈(甲州:山利縣)난부의 하기리 미마키(御牧) 이이노사부로(飯野三郞)의 지두로
하기리에 살고 있었던 것에서 하기리도노(波木井殿)라고 불리고 있었다
2조 日興상인이 시주쿠인(四十九院)에서 면학에 힘쓰고 있었을 즈음부터 교제가
있고 그 후 1269년경 日興상인의 교화에 의해 대성인께 귀의했다고 전해진다
1274년에 대성인으로부터 내려졌던 어서에는
『귀하는 이것을 들으신 것은 한 두 번이며 일시 이시니라 그러나 아직도 버리시지
않고 신심한다는 것을 들었는데 오로지 금생의 일이 아니로다』(어서 1372)
고 말씀하시고 있으므로 입신당초에는 직접 대성인으로부터 지남받고 있었던
기회는 적었으나 단호히 염불 등의 사종을 버리고 제계(制誡)를 지켜서 신앙에
힘쓰고 있었던 모양을 알 수 있다
1274년 4월, 대성인은 세번째의 국주간효를 이루신 후 제자들의 육성과 출세의
본회를 이루기 위하여 가마쿠라를 떠나서 산중으로 들어가시게 되었다
이 때를 맞아 하기리사네나가는 日興상인과 상담하여 하기리향의 미노부산으로
대성인을 초청드려서 대성인은 이 원(願)을 들어셨던 것이었다 당시 대성인의
문하는 사가미 무사시 아와 시모우사 이즈 스루가 가이 등각지에서 유력한 단월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노부산이 선택된 이유는 가마쿠라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고
또 타종의 세력이 비교적 약한 땅이었는 것 이외 대성인의 日興상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다고 배찰되어 진다
즉 가이지방은 日興상인의 홍교의 땅이고 하기리사네나가와 그 일족 이외에도
주변의 땅에는 日興상인 교화에 의해 많은 단월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스스로의 영지에 대성인을 맞이한 기쁨이 오히려 하기리사네나가에게
우월감 같은 심정을 품었던 것일까 그 후에 깊이 부손한 신앙자세가 노정되었던 것이다
1277년의「시죠깅고전답서」에는
『다이가쿠전(大學殿)과 에몬노다이우전(衛門大夫殿)의 일들은 말씀한대로
했으므로 기원이 이루어진듯 보이도다
하기리전의 일은 법문의 신용은 있는 것 같지만 이 소송은 말한대로 실천하지
않았으므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생각해 왔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드렸기 때문인지 다소 효험이 있었노라 그런데 생각한만큼 듣지
않았으므로 또한 생각한만큼 되지 않았느니라
단나와 스승과 뜻이 맞지 않는 기원은 물 위에 불을 지피는 것과 같으니라』
(어서 1151)고 술하시고 있다
다시 대성인의 단월 상당수가 신앙 때문에 주군으로부터 소환당하여 소령몰수
등의 궁지에 빠졌던 것이다
이 부당한 처사에 대하여 소송을 일으켜서 소령을 되돌려 받으려고 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대성인이 이것을 제지하셨기 때문에 히키요시모토
이케가미무네나카 등은 이에 따라서 오히려 기원의 성취를 보았다
그러나 하기리사네나가의 경우 소송은 세법의 일이라고 해서 대성인의
지남에 따르지 않았던 것 같다
더욱이 1281년, 미노부에 대방(大坊)이 낙성되었다
그때까지의 삼간사면인 초암이라는 것은 비교할 수도 없이 십간 사면의
당당한 대방이었다
낙경법요의 수일 전부터 청천이 계속하여 많은 참예자가 모여 그 모양은
마치 쿄토 가마쿠라의 석양 때에 붐비는 것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기념하여야 할 경사에 지두인 하기리사네나가가 참예를 태만히 하여
대성인은 대단히 실망하셨다
이러한 여러 가지 자세에서 하기리사네나가의 신앙에 불안을 가지셨던 대성인은
『지두가 불법(不法)할 때는 나도 주(住)하지 않음』
(성전 555)이라는 유언을 남기셨던 것이다
그 후 7년을 지나서 불행하게도 대성인의 예언은 적중했다
하기리사네나가는 민부니고에게 부추겨진체로 제개의 방법을 범하여 성역인
미노부산을 방법오탁의 산으로 변하게 하여 日興상인의 미노부이산이라는
일대불상사를 일으켰던 것이다
금언에 말하기를
『물고기 새끼는 많으나 고기로 되는 것은 적고 암라수의 꽃은 많이 피지만
열매로 되는 것은 적도다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보리심을 일으키는 사람은
많으나 퇴전하지 않고 진실의 도(道)에 들어가는 자는 적으니라』(어서 1384)
『간혹 법화경을 믿는 것 같은 사람들도 세간을 꺼리고 남을 두려워해서
대부분이 지옥에 떨어짐은 딱하고 가엾도다』(어서 1437)라고.
종지건립(宗旨建立) 당초부터 대성인을 지원했던 나고에아마,
미노부입산으로부터 9년간에 걸쳐서 대성인 일문을 외호한 하기리사네나가
까지도 방법여동하여 퇴전했던 것을
생각할 때 정말로 불도수행을 관철하기 어려움을 통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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