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신입회원이어서 여러 가지 궁금한 점도 있고, 호기심 때문에 늘 질문할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해도 될지하는 고민이 될 때가 많은데…….
Q
‘이런 질문을 하면 실례가 되지 않을까.’ 하고 망설여집니다.
A
니치렌 대성인은 “제목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성불할 수 있는지… .”라고 질문한 문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법화경에 대해서 의심을 일으켜 그 취지를 물으신 것은 대단히 진귀한
대선근이외다.”(어서 1402쪽) 이처럼 대성인은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질문한 그 자체를 최고로 칭찬하셨습니다.
신심을 깊게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의문이나 질문은 구도심의 표현입니다. 물론 내용에 따라 질문하기에 적절한 장소인지,
또 질문해도 괜찮은 사람(간부)인지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질문을 받은 사람 쪽에서 보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경우에 질문받은 사람은
선배 간부에게 지도를 받아서라도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질문을 받은 사람도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어, 서로 신심을 깊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므로
망설이거나 꺼려하지 말고 질문하세요.
Q
그래도 여러 사람들이 참석한 좌담회나 연찬회에서는 어쩐지
용기가 쉽게 나질 않습니다. 저만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A
물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질문하려면 강한 구도심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도다 선생님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적확한 질문이나 깊은 법리를 말하는 계기가 되는 질문이 나오면 “질문 잘 해
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절대 망설일 필요가 없습니다. 질문회에는 대화가 있습니다. 대화는 이해를 낳습니다. 그리고 그 이해가 신앙에 활력을 주는 원천이
되어 새로운 전진을 촉발하기 때문에 진지하고 당당하게
질문하기 바랍니다.
Q 예전에 불법에 대해 질문한 친구에게 설명을 하다 잘 몰라서
얼버무린 적이 있습니다. 그 후로 누가 질문을 하면 대답을
피하게 됩니다.
A 모든 질문에 대답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는 선배 간부를 찾아가 상의하거나, 교학에
관련된 문제라면 조사하고 연구해서 나중에라도 답해 주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간혹 묻고자 하는 요점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질문한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의문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문제를 정리하면서 답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가끔 학회나 불법을 부정적으로 보고 골탕 먹이려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럴 때는 당당하게 논파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케다SGI회장 스피치
질문회는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가 시작한 이래, 줄곧
이어온 창가학회 전통이다. (중략) 도다는 경전 자체가 무문자설(無問自說: 질문이 없는데 부처가 자신의 의지로 법을 설하는 것)의
방편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질문회라고 자주 말했다.
그리고 부처가 설법하는 회좌(會座)에 모인 발기중(發起衆),
영향중(影響衆), 당기중(當機衆), 결연중(結緣衆)이라는 사중(四衆)을 현대 질문회 참가자들에 비유해 알기 쉽게 설명한 때도 있었다. “발기중은 부처에게 설법을 청하고 부처의 화도(化導)를 촉구하는 중생을 말하는데, 이는 질문회에서 모든 사람을 대표해 질문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또 영향중은 부처의 곁을 따라다니며 법을
찬탄하는 중생입니다. 예를 들면, 질문회에서 병에 대한 지도를
듣고 자기에게도 이런 체험이 있다며 그 체험을 말해 지도를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또 당기중은 이미 시기가 무르익어 그 자리에서 득익(得益: 불법에서는 성불, 깨달음을 의미)하는 기근을 지닌 중생을 말합니다.
이는 병에 대한 지도를 듣고 이해하여 자신도 고칠 수 있음을
깨닫고 확신을 얻는 사람을 말합니다. 결연중은 미래에 득익할
만한 연을 그 자리에서 맺는 중생을 말합니다. 질문회에서 지도를 듣고 ‘ 그렇다면 나도 신심해서 더욱 깊이 이해하자.’라고 결의하는 사람을 말합니다.”라고 도다는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 사중 가운데 발기중에 해당하는 질문자가 가장
소중하다고 역설했다.
-《신·인간혁명》 7권 ‘새싹’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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